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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1

사마S 2025. 1. 7.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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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서 말하리라
Written by 헤르츠
Call of Cthulhu 7th EditionFan-made Scenario
옳은 말은 거세되어선 안 된다.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살아서 이야기하는 거다. 그래야 다음 세대로 우리 말들이 전해질 수 있다.어떤 구전은 기록보다도 강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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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C 한양운 PC 강선중
2025.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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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걷는 길
B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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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의 달은, 한낱 인간 따위는 너무도 손쉽게 잡아먹으려 드는 것 같을 정도로 무거운 배를 부풀린 채 거친 눈을 뜨고 있다.
18살 9월, 사관학교에 입학하고 첫 달이 지나갔다.
각성자들은 학교에 적응하고 제나름의 친분을 쌓아 가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관학교라고 해도 결국 분류는 대학, 지식의 보고다.
바쁘게 뛰어가는 선배들, 과제 탓에 골몰하며 늦은 시간까지 도서실 불을 환히 밝히는 학생들, 느슨한 자유와 적당히 용인되는 비행.
저 장벽 너머에선 도무지 보기 어려운 녹음이 교정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었다.
세상이 다 이곳 같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오늘은 날이 좋아 하늘까지 맑았다.
그것이 다 갖기 어려운 축복이라는 사실을, 카사블랑카의 시민들은 머리로나 알지 가슴으로는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문득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가 반짝이며 알림을 울렸다.
0
홀로그램 패널이 온통 노란색이다.
늦지 말라고 성화다.
오늘은 1학년 학생들이 두근거리며 기다리던 첫 가상 훈련이 있는 날이니 당연하다.
운동장 두 개 크기만큼 널찍한 홀로그램 단련실에서 특수 렌즈를 착용하면 바깥 사막과 동일한 환경을 구성해 둔 가상 VR 세계로 진입할 수 있다.
첫 한 달간 이론으로만 배운 전투를 어서 빨리 실전과 비슷한 공간에서 경험하고 싶다며 애가 닳은 학생도, 몹시 긴장하여 창백하게 질린 채 서 있는 학생도 있었다.
사실 학생들은 ‘자신과 맞는 구현자나 설계자가 누구일까’를 더 궁금해했다.
페어로 활동하는 각성자들은 70% 가량, 거기서 다시 15% 정도의 비율이 ‘각인’을 맺어 시너지를 내곤 한다.
페어를 자율적으로 정하라고 하면 보통 친한 친구끼리 무턱대고 함께했다 도리어 전투 방식이 맞지 않아 다치는 경우가 있었으므로,
1학년 때에는 하늘길 시스템이 신체 데이터를 통해 서로 보조해줄 수 있겠다고 판단한 후보 학생들과 여러 번 짝을 바꾸어 가며 누가 자신과 알맞는지 테스트를 해 보는 것이 관례였다.
깐깐해 보이는 학생부회장이 명단을 읽었다.
요한 에를리히:자, 첫 번째 임시 페어 부른다. 구현 A반의 스즈키 와타루, 설계 E반 노노이 라가힛. 앞으로 서. 다음, 구현 B반의 시트라 볼크, 설계 D반 이한영…….
각자 자신의 임시 페어를 찾느라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당신의 이름은 한참 기다린 후에야 불렸다.
요한 에를리히:…설계 ○반, 강선중. 구현 ○반, 한양운.
멀리서 한양운이 다가온다.
훈련 순서가 다가올 때까지 두 사람이 잠시 인사를 나눌 수 있도록 하자.
강선중:아, 안녕하세요? (작게 손들어 인사한다.)
한양운:(힐끔 쳐다보고는 고개만 끄덕인다.) 어. (우와... 싸가지 없어 보인다. 심지어 단답이다.)
강선중:(무서워...!!! 오늘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걸까...단답에 대화를 이끌어나갈 주제 생각하는 모양처럼 주변 둘러보더니, 활짝 웃어 얘기 꺼낸다.) 근데 여기 조금 신기하게 생기지 않았어요? VR 기기도 막-있고, 사관학교 이름 때문에라도 조금 멋져 보이기도 하고. 안 그래요?
한양운:(딱히 기분이 안 좋은 건 아니었다. 그냥 원래 성격이 이 꼬라지였을 뿐...! 네가 활짝 웃자 멀뚱히 쳐다보다가 대놓고 '피곤한 게 걸렸네.'라는 듯한 얼굴 한다.) 신기하긴 개뿔... 요즘 이런 건 흔한지 좀 되지 않았나. (큰 공간이라 신기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 싶긴 하지만... 이쪽은 별 감흥 없는 듯 시큰둥한 반응이다.) 애도 아니고, 사관학교가 놀러 온 것도 아니고. (짧게 혀 찬다.)
강선중:진짜요?? (네 말에 진심으로 놀란 듯, 동공 커지곤 손 모은다.) 저희 집은 이주 오기 전에 조오-금 끝 쪽에 살았어서 그런가...최근에 왔거든요. 이런 신기한 광경을 보는 게 새로워요. 아, 어쩐지 주변에 호수도 있더라. 역시 도시는 좋네요. 저까지 도시인 된 느낌~. 맞지만요. (...) 양운? 님? 이? (동갑 맞겠지? 아닌가?) 는 언제부터 이 도시에서 사셨어요? (다른 곳에 시선이 팔려 네 감정을 읽기엔 역부족이었는지, 혼자서 신나 주절거린다.) 에이, 쉬어가야 나아가는 것도 존재하는 거죠~. 처음엔 친해지면서 쉬는 시간. 좋지 않아요?
한양운:(외치는 말에 움찔 놀란다. 저 정도라고...?) ... 아. 대체 얼마나 후진 곳에서 살았으면 놀이공원 처음와 본 애새끼처럼 구냐...? 도시라고 딱히 좋은지도 잘 모르겠는데. (제 뒷목 문지르다가 '양운 님'이라는 호칭에 오소솟 소름이 돋았다. 사색으로 질린 표정을 보니 말 안 해도 알겠다.) 미친, 그딴 호칭으로 부르지 마라! 대충 형이라고 해. 선배라고 하던가. (딱 봐도 제 나이 맞춰 들어온 것 같은 앳된 얼굴에 -애초에 자기보다 더 나이 많은 1학년이 있긴 한가 싶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허, 넌 친해지고 싶냐? (그러니까 얼굴에 흉터 쫙 찢어지게 난 4살 연상 동기랑...?)
강선중:놀이공원 재밌겠다. ...후진 곳이라니, 제 고향에 사는 사람들이 들으면 상처 받을 거예요. (뭐 지금은 없으니 다행이지만요. 덧붙이며 엄지 날린다.) 지방에 안 살아보셨구나? 정말이지 전생에 복 받았단 걸 깨달아야 돼요. (아하, 이게 아니구나. 깨닫곤 바로 님이란 호칭은 뇌 속에서 삭제시킨 후 네 어깨 토닥인다.) 아하하, 동갑 아니었구나. 어쩐지 흉터부터...엄청난 일을 겪으셨던 거 같이 보이더라니. 아니, 같은 1학년인데 선배는 말이 안 되죠! 그럼 형이라고 부를게요. (물음에 이게 무슨 질문이지...? 를 온몸으로 표하듯 당황하며 고개 갸웃거린다.) 그치만 이제 페어가 될 거라는데 친해지고 싶은 게 당연하지 않아요? 반갑게 지내면 좋죠! 마침 친한 친구도 없었고-.
한양운:내가 그 사람들 앞에 대고 말한 것도 아니고 들리지도 않을텐데 상처는 뭔 상처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며 덧붙이고는 날린 엄지에 시선 돌려 버린다.) 지방에 산다고 복 못 받았고, 도시 산다고 복 받은 건 아니거든. (18살이니까 앵간히 해야지 생각하면서도 츳코미를 안 걸 수가 없네... 네가 어깨 토닥이면 손 텁 잡더니 얌전히 내려놓는다.) ... 1학년이 18살이던가. (시발... 까마득하네 진짜...) ... 하아. 그래, 마음대로 해. (싸가지 없게 야라던가 이름만 안 부르면 됐지. 네가 고개 갸웃거리며 물으면 바람 빠진 소리내며 픽, 헛웃음 짓는다.) 다른 구현자들도 많은데 굳이 나랑? 딱 잘라 말하는데 난 귀찮게 구는 애 질색이니까 다른 '친구' 찾아봐라.
앞선 순서 팀이 훈련실로 들어가고, 그들이 바라보는 가상 환경과 전투 광경이 부속실의 대형 스크린으로 중계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친구들을 응원하면서 손에 땀을 쥐는 스포츠처럼 중계를 관람한다.
가상 훈련인 만큼 부상을 입을 일은 없지만, 신체 부위마다 장착된 센서가 타격을 받으면 착용한 방어구가 고정되어 실제 부상처럼 움직임을 차단해 해당 부위를 사용할 수 없게 되므로 이 훈련 안에서는 진짜 다친 것이나 다름없다.
몇몇 팀은 훌륭한 성과를 냈으나 대부분은 기본적인 타격 범위조차 가늠하지 못하고 제한 시간을 초과했다.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모두가 처음이니까.
교수들도 채점 기준을 너그럽게 두고 있는 것 같았다.
유리 모하에:저기, 지금 좌표 C4에서 총 쏘고 있는 애 이름이 뭐더라?
요한 에를리히:아까 말했잖아. 입학 체력평가 때 5등인가 했다던 애라고.
불쑥 뒤에서 말을 건 것은 학생회장 ‘유리 모하에’와 부회장 ‘요한 에를리히’.
3학년 생도들 중 우수한 학생들은 1학년 생도들의 멘토가 되어 졸업하기 전까지 2년간 상급생으로서 후배들을 이끌어 주는 제도가 있는데, 구현 A반과 설계 D반의 멘토가 바로 이 페어였다.
운이 좋다고 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각 학년 수석 및 차석을 번갈아 차지하고 있었으니까.
학기 첫 주에 유리가 구현자, 요한이 설계자라는 소개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대추야자를 집어먹고 있던 유리가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유리 모하에:쫄지 마! 몇 번 하다 보면 이제 지루하고 졸려서 빨리 실전이나 하고 싶다고 빌게 될 걸.
강선중:아, 좋은 말 감사해요. 그래도 역시 처음이라 그런가, 조금 떨리긴 하네요....(작게 심호흡한다.) 해가 되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에요.
유리 모하에:실수한다고 해서 교수님이 화내시진 않을 걸? 1학년이라 보통은 고만고만하게 봐 줘~ (강선중의 등을 몇 번 토닥인다.) 화이팅~!
한편 요한은 혀를 차곤 안경을 밀어 올리며 스크린에 집중했다.
‘입학 체력평가 때 5등인가를 했다던’ 동급생이 화면 안에서 정확한 사격 실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능력이 총과 관련된 학생이었던 것이 얼핏 떠오른다.
곁에서 그의 페어가 소리를 지르는 게 스피커를 통해 울렸다.
“좀 더 위로 경로를 끌어올릴 테니, 한 번에 쏘아 터뜨려! 마지막 한 방이다 생각하고 해치우자고!”
곧이어 설계자 쪽이 설계한 경로를 따라 미로를 뚫고 지나가듯 구현자의 총알이 궤적을 바꾸었다.
허공에서 몇 갈래로 갈라진 총알 파편이 굉장한 소리를 내며 크리쳐형 로봇의 머리를 터뜨렸다.
지켜보던 동기들이 환호성을 울렸다.
유리 모하에:어때? 저 두 사람은 합이 꽤 잘 맞는 것 같지? 여기 둘은 서로 인사 나눴어?
속 시원한 타격감을 따라 박수를 치던 유리가 당신과 한양운을 돌아보았다.
서로 잠시 눈이 마주친다.
강선중:나누긴 했...죠? (뒷목 만지작 거리며 한양운쪽 힐끔 살펴 반응 본다.)
한양운:(총 쏘는 사람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가 뒤늦게 시선 느껴졌는지 멀뚱히 쳐다보다가 고개만 끄덕인다. 질문이 뭔지 파악하긴 한 건가...?)
짧은 대화를 나누며 얼마나 기다렸을까, 두 사람의 순서가 되었다.
보급받은 특수 렌즈와 방어구를 착용하자 몸이 다소 무거워졌다.
유리와 요한은 통신 인이어를 끼면서 조원들에게 손짓을 했다.
유리 모하에:자, 절대 긴장하지 말고. 굉장히 현실적이지만 실상은 그냥 거대한 훈련실이란 걸 잊지 마.
요한 에를리히:그렇다고 실전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임해서도 안 된다. 그런 감각에 익숙해지면 장벽 너머로 나아가 진짜 적을 맞닥뜨려도 그 상황을 모의 훈련이나 게임처럼 느껴 버리고 마니까.
유리 모하에:우리가 앞뒤에서 너희를 엄호해 줄 거고, 진짜 부상을 입었을 경우에는 곧바로 시계 옆 S버튼을 연달아 세 번 눌러. 다들 알겠지만 원래 이 버튼 세 번 신호는 실제 위급상황에서 연락처에 등록된 비상번호 쪽으로 연락을 보내는 시스템인데, 이 훈련실 범위에 한정해 그 비상신호가 관리 교수님들께 도달하도록 시스템이 변경되어 있어. 게다가 저기 스크린으로 모두 보고 있을 테니까. 알았지?
주의사항을 몇 가지 더 들은 후에야 훈련실 입실이 재가되었다.
네 사람이 모두 입실하고 마침내 문이 닫히자,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는 모래바람이 불었다.
근래의 방독 마스크는 기능이 좋아 쓴 것 같지도 않게끔 호흡하게 해준다지만 이런 기후 속에서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인이어 안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한 차례 먼지 폭풍이 가셨을 때 비로소 풍경이 보였다.
0
‘재앙의 날’을 기점으로 인류가 유사 이래 이룩한 빛나는 문명은 전부 사토 속에 묻혔다.
첫 몇 년간은 식물들조차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해 말라 죽어갔던 고로 당대에 흔히들 ‘인류가 멸망하면 몇 년 안에 건물 벽면을 담쟁이덩굴이 뒤덮고, 동물들이 활개를 치며……’ 라고 상상하던 광경조차 제대로 전개되지 않았었다고 한다.
가동을 중단한 원자력 발전소가 비상 전력마저 잃고 인간이 직조한 가장 큰 멸망을 세상에 내보내려 했을 무렵에는 갓 개화한 각성자들이 그 위기를 막아 처음으로 인류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사람을 징벌하려 드는 것 같은 함신,
인간의 오만을 꾸짖듯 흐려진 날씨,
찬란했던 문명에 바치는 추모비처럼 모래 속에 묻혀 쓸쓸히 늙어 가는 빌딩숲,
그리고 멀리 가장 거친 먹으로 그려낸 듯이 일렁이는 바다.
장엄한 자연의 비난을 처음 보는 1학년들은 말을 잃기 마련이다.
이 광경에 익숙한 멘토들이 앞장서 홀로그램 패널을 띄웠다.
0
요한 에를리히:이 공간은 카사블랑카 북동쪽 게이트 바깥 구역과 일치하는 구조로 생성된 거야. 설계자들은 각자 지도에서 목적지까지의 최단 경로를 표시해 봐.
강선중, 항법 판정
강선중:
항법
기준치: 75/37/15
굴림: 1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요한이 올바른 경로가 표시되었는지 재차 체크했다.
이제 네 사람은 이 경로를 믿고 목적지까지 움직이면서 하나 이상의 크리쳐 로봇을 파괴해야 한다.
유리와 요한은 몇 가지 조언을 이어 갔다.
가장 먼저 강조된 것은 안전이었고, 그 다음으로 이어진 조언은 엄폐물과 환경을 활용하는 방법이었다.
낡아 가는 건축물들을 이용해 몸을 숨기고 접근했다가 설계자의 경로 구현에 에너지를 실어 구현자가 한 방을 터뜨리는 것이 기초적인 전투 방식이라고 했다.
넷은 가장 가까운 폐건물 옥상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유리는 한양운에게 단추 정도 크기의 정찰 드론을 건네 준다.
유리 모하에:이걸 바깥으로 던질 건데, 너네가 할 거야. 서쪽으로 30m 정도 위치에 크리쳐 로봇이 있어. 설계자는 왼쪽 창문으로 거리를 가늠하고 에너지 흐름을 느껴. 구현자는 이 드론에 네 에너지를 실어서 던지는데, 설계자의 경로에 얹어서 실어 보낸다는 느낌으로 해야 해. 나중에 익숙해지면 이런 드론 같은 유도장치 없이도 두 사람의 에너지 운용이 손쉽게 합쳐지는 거지. 자, 해 봐! 무서워하지 말고.
한양운 핵심 기능 판정, 강선중 항법 판정
강선중:
항법
기준치: 75/37/15
굴림: 46
판정결과: 보통 성공
한양운:
사격(라/산)
기준치: 90/45/18
굴림: 3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그것은 몹시도 기이한 경험이었다.
전신의 감각이 단번에 확장되고, 시야가 환하게 트였다.
공중에 투명하게 고여 있던 에너지가 희미한 붉은빛으로 일렁이며 물들고,
제멋대로 엉겼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던 에너지 흐름이 점차 정렬되어 미로 지도 같은 꼴을 이루었다.
방향은 서쪽으로 30m, 설계자는 에너지의 흐름을 가지런히 한 가닥으로 이어 뽑아 경로를 설정한다.
구현자가 그 경로 위에 제 힘을 실어 드론을 날려 보냈다.
미끄러지듯 경로를 타고 바깥을 떠가던 드론은 이내 적절한 길을 찾아 크리쳐 로봇에게로 향했다.
우여곡절 끝에 드론은 네 사람의 홀로그램 패널에 30m 너머의 크리쳐 로봇을 비춰 주었다.
미끌거리는 피부, 구역질나는 주둥이 속에서 긴 송곳니 두 개가 번쩍이는 크리쳐가 그르릉거리고 있었다.
몹시도 끔찍한 모습이다.
이성 판정
강선중:
SAN Roll
기준치: 50/25/10
굴림: 24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이성 -1
잠시 침묵이 감돌고, 유리의 지휘 하에 KPC/PC 페어의 이능력 타입에 따라 2:1 전투를 전개한다.
폐건물에서 원거리 전투를 벌여도 좋고, 뛰어내려 근접전을 벌여도 좋다.
0
강선중:(현재 상태론 원거리에서 공격할 수 있는 마땅한 수단이 없다...생각하곤 한양운 어깨 턱 잡는다.) 같이 가까이 가서 싸워줄 수 있겠어요?
한양운:(가까이 가자는 말에 뭐 씹은 표정으로 쳐다본다.) 뭐? (아까 총 쏘는 거 안 봤나. 한참 꼬라보다가 답답한 듯 제 뒷머리 헝클어 트리더니 작게 욕 짓씹는다.) 시발... (그래봤자 상황이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 어쩔 수 없지. 지나가면서 짜증스럽게 네 정강이나 찼다.) 뭘 물어보고 있어. 답이 그거 밖에 없구만.
강선중:(어두워지는 네 표정에 말 실수했나? 싶다가도...) 악-! (초등시절 몸싸움 했을 때 빼곤 잘 맞아보지도 않은 곳을! 얼얼하다...원래 약주고 병 주는 성격인 건가??) 아무튼, 감사해요. (아직도 고통이 남아있는지 미간 찡그리고 한 발로 점프하듯 걷더니 이내 다시 자세 잡고 크리쳐 근처로 뛰어내린다.)
전투 순서는 강선중-한양운-크리쳐 로봇 순이다.
강선중, 설계 판정
강선중:
설계 Roll
기준치: 75/37/15
굴림: 5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비무장
기준치: 80/40/16
굴림: 59274
+2: 극단적 성공
+1: 극단적 성공
  0: 보통 성공
-1: 보통 성공
-2: 보통 성공
피해: 4
강선중, 설계 판정
강선중:
설계 Roll
기준치: 75/37/15
굴림: 74
판정결과: 보통 성공
한양운 핵심 기능 판정
한양운:
라이플
기준치: 90/45/18
굴림: 99
판정결과: 실패
피해: 9
교육용 크리쳐 로봇 공격 판정
교육용 크리쳐 로봇:
비무장
기준치: 70/35/14
굴림: 8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피해: 6
명중 부위
가슴
1
교육용 크리쳐 로봇이 한양운을 향해 송곳니를 꺼내 들었다.
한양운 회피 판정
한양운:
회피
기준치: 60/30/12
굴림: 70
판정결과: 실패
강선중 설계 판정
강선중:
설계 Roll
기준치: 75/37/15
굴림: 2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비무장
기준치: 80/40/16
굴림: 31739
+2: 극단적 성공
+1: 극단적 성공
  0: 극단적 성공
-1: 어려운 성공
-2: 어려운 성공
피해: 4
강선중 설계 판정
강선중:
설계 Roll
기준치: 75/37/15
굴림: 33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한양운 핵심 기능 판정
한양운:
라이플
기준치: 90/45/18
굴림: 76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7
교육용 크리쳐 로봇 회피 판정
교육용 크리쳐 로봇:
회피
기준치: 30/15/6
굴림: 22
판정결과: 보통 성공
교육용 크리쳐 로봇 공격 판정
교육용 크리쳐 로봇:
비무장
기준치: 70/35/14
굴림: 41
판정결과: 보통 성공
피해: 3
명중 부위
가슴
1
가까이 다가온 로봇이 기이한 소리를 내며 다시 한양운에게 송곳니를 들이댄다.
한양운 회피 판정
한양운:
회피
기준치: 60/30/12
굴림: 77
판정결과: 실패
강선중:괜찮으세요??
한양운:... 가상 부상이라 크게 아픈 건 아닌데. 젠장... (라이플 고쳐 쥔다.) 신경 쓰지 말고 하던 대로나 해라!
강선중 설계 판정
강선중:
설계 Roll
기준치: 75/37/15
굴림: 72
판정결과: 보통 성공
비무장
기준치: 80/40/16
굴림: 133665
+2: 극단적 성공
+1: 극단적 성공
  0: 극단적 성공
-1: 어려운 성공
-2: 보통 성공
피해: 5
강선중 설계 판정
강선중:
설계 Roll
기준치: 75/37/15
굴림: 28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한양운 핵심 기능 판정
한양운:
라이플
기준치: 90/45/18
굴림: 204655
+2: 어려운 성공
+1: 어려운 성공
  0: 어려운 성공
-1: 보통 성공
-2: 보통 성공
피해: 3
교육용 크리쳐 로봇 회피 판정
교육용 크리쳐 로봇:
회피
기준치: 30/15/6
굴림: 81
판정결과: 실패
사투 끝에 첫 전투가 마무리되었다.
유리의 말에 따르면 두 사람의 협력 수준이 아주 좋아 평균보다 빠르게 크리쳐를 물리칠 수 있었다고 한다.
유리 모하에:최초 동조율이 60% 이상으로 계산된 것 같은데? 이거 엄청 높은 수치야!
강선중:어쩐지 형이랑 해서 설계가 더 잘 되는 느낌을 받더라니...다행이네요. 아하하, 운명인가 봐!
한양운:... 하아......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는다. 총이나 재정비하고 있다.)
반파된 크리쳐를 바라보며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관찰력 or 지능 판정
강선중:
관찰력
기준치: 80/40/16
굴림: 30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저것은 어떤 길짐승도, 어떤 날짐승도 닮지 않았다.
……방사능 탓에 변이된 동식물이라기엔 조금 이상하지 않나?
강선중:(...확실히......처음엔 학교가 임의로 변형해둔 거라 생각했었는데.)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상념에 잠겨 있던 때, 동쪽 모래 폭풍 너머로 멀리 거대하게 솟은 첨탑이 어른거렸다.
관찰력 판정
강선중:
관찰력
기준치: 80/40/16
굴림: 67
판정결과: 보통 성공
부드러운 모랫빛 모스크다.
상단부에 발린 청록색 염료가 누렇게 바랬고, 아름다운 문양이 둘러쳐져 있다.
아랫부분의 아치형 석벽에 파도가 들이친다.
침묵 어린 시선으로 그것을 바라보던 유리가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유리 모하에:저 모스크는…….
강선중:무슨 일 있나요?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는 눈치인데, 유리는 다른 것을 의식하는 모양이다.
곧 입을 꾹 다문 유리가 몸을 돌렸다.
유리 모하에:아니야. 가자. 다른 애들이랑 합류하게.
강선중:(찝찝한데...그래도 선배 말이니까..뭐..처음부터 밉 보일 필요는 없지.) 수고하셨어요. 형도. (네 소매 질질 끌며 다른 애들이랑 합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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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독
B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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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가상 훈련이 종료되고 학교는 잠시간 그 화제로 시끄러웠다.
저마다 제 임시 페어와의 동조율이 어땠는지, 자신이 크리쳐 로봇을 얼마나 멋지게 부수었는지 떠들어 댔다.
저런 흥분도 반복된 훈련을 거치고 나면 결국 사그라든다는 것을 아는 멘토들만 쓴웃음을 지었다.
이윽고 토요일, 학생들은 간만에 찾아온 휴식을 누리고 있었다.
당신은 방금 잠에서 깬 참이다.
이제 뭘 하면 좋을까?
강선중:(여전히 졸리다....휴일이고, 피곤하고, 나른하고, 누워있지만 눕고 싶고, 뭐 연락 온 건 없나? 팔만 들어 워치에 새로운 건 없는지 확인해본다.)
그때 방문을 열고 동급생이 굴러들어오듯 뛰어 왔다.
헉헉거리던 그가 외쳤다.
“야, 너는 아니지?!”
갑작스레 들어와 ‘너는 아니지’ 하고 묻는다고 해도, 뭐가 아니냐는 말인가.
동급생은 답답하단 듯이 가슴을 쳤다.
“지금 인자 다 뒤집어졌어! 아직 안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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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서버에 접속해 봐야 할 것 같다.
강선중:뭐? ....연예인 기사라도 떴어? (왜저렇게 호들갑이람. 그나저나...워치로 접속 가능하겠지? 몸만 돌려 워치 켜서 접속 시도해본다.)
당신이 스마트워치를 통해 인자미나에 접속하면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권을 볼 수 있다.
1위 : 스와콥문트
2위 : 보츠와나
3위 : 모로코 장벽
4위 : 망명 정부
당신은 검색어 순위 키워드를 서치해 보거나, 동급생에게 이게 무슨 일인지 질문할 수 있다.
강선중:...뭐라는지 하나도 못 알아 먹겠는데. 이상한 일이라도 터졌어?
"여기 커뮤니티 좀 들어가서 봐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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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중:(엄청 일 났네.....한 동안은 반응 말고 기사만 봐야겠구만...) 이제 대충 알겠어...그래서, 뭐가 나는 아니지인데? (다시 시선 동급생에게로 향한다.)
…그러니까, 글의 요지는 ‘정부가 주장하는 바와는 달리 사실 스와콥문트에는 뭔가 조작된 구석이 있다’는 것 같다.
"너가 쓴 거 아니냐는 거였지. 반응 보니까 아닌 것 같은데?"
“나 새벽부터 잠 안와서 계속 새로고침 하고 있었는데 야, 글이 진짜 네 번을 올라왔다니까? 그러다 세 번째 글 삭제됐을 때 인자미나 서버가 잠깐 터졌거든? 그 뒤로 저 네번째 글이 오늘 동튼 직후에 올라왔는데 이상하게 저 글은 삭제가 안 돼. 코딩동아리 애들이 그러는데 사이트 자체를 해킹해서 글 작성한 아이디를 특수등급으로 빼둔 게 아니냐고 하더라고. 관리자 권한이 있어도 글 삭제가 안 되게.”
그러고선 주변 눈치를 본 동급생이 귀에 속삭였다.
“왜, 이런 반동분자 같은 글은 애초에 AI가 맥락을 검열해서 작성 자체가 안 되잖아. 글쓴 애도 시스템을 뚫을 줄 아는 녀석이 아니냐는 거지. 서버나 해킹, 계산 관련 이능력 가진 애들 아침부터 다 불려갔어.”
그제야 기숙사가 이상하게 조용하다는 게 느껴진다.
다들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정부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사람이 어느 순간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시민들 사이에서 유명한 이야기다.
딱히 근거는 없지만.
이런 상황에 남의 눈에 띄어서 좋을 것은 없겠으나 그렇다고 하루 종일 기숙사방에만 처박혀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가오는 중간고사도 있고, 과제도 있다.
당신은 성향에 따라 몇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이 사건과는 별개로 개인 일정에 신경을 써도 좋고, 게시글에 의문을 느껴 소문을 좀 더 수집하러 나갈 수도 있다.
강선중:(.....) 근데 동급생 중에서도 몇 명 불려갔어?
"불려갔겠지!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니까. 근데 넌 새삼 태평하게 여태 자고 있었냐. 과제는 했어?"
강선중:그런 게 있었나.
"아니 미친! 야 우리 그거 오늘 자정까지야! 도서관에 자료 좀 있을텐데 가서 찾아봐라! 이 자식 이쪽이 급한 게 아니었네!"
강선중:넌 과제 다 했어? 양운 형은 다 했대?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잡혀가도 과제는 해야 한다니. 엉기적 몸 일으키더니 방 밖으로 나선다. 형은....총 관련 능력 같았으니까...뭐...잡혀가진 않았겠지.)
"난 다 했지. 설마 안 하고 너한테 닥달할까. 아, 너랑 이번에 페어로 활동했던 형? 내가 구현자 반도 아닌데 어떻게 아냐. 너가 더 잘 알지 않아?"
강선중:...........연락처 안 주던데. (눈빛만 봐도...)
"..."
동기는 할 말을 잃었다.
뭐... 어쨌든 도서관에서 과제용 책을 빌려학생회관의 자습실로 가면 될 것 같다.
강선중:(나만 페어랑 쌀쌀한 거였어??????)
(끙.....갑작스레 일어나서 어지러운 머리 이끌고 자습실로 향한다.)
(아차차, 그건 후순위지. 깜빡~. 자습실로 가던 길 도서관으로 옮긴다.)
아방하다.
고요한 도서관. 각성자사관학교의 도서관은 카사블랑카에서도 독보적으로 장서 수가 많아 유명하다.
다가온 중간고사 때문에 대부분 공부에 몰입해 있지만, 서가와 서가 사이에서 두 학생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니까, 몬로비아에서 시신 발견됐다는 거 구라 아니라니까. 아놀드 박사가 우리 사촌언니 담당교수였잖아.”
아무래도 아까 그 게시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책 너머로 흘끔 살피니 2학년 선배들이다.
대인기능or듣기 판정
강선중:
듣기
기준치: 80/40/16
굴림: 21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획득할 수 있는 정보는 다음과 같다.
화학자였던 아놀드 박사는 새로운 물질을 발견해 낸 공로가 있어 스와콥문트 시민권을 획득했다.
이후 제자에게 본인의 연구자료를 전부 넘기고 조용한 은퇴 생활을 즐긴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에는 SNS를 통해 요리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는 근황을 업데이트한 바 있다.
연구실 제자들 중 두어 사람은 아놀드 박사와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는다. 화상이나 음성통화도 이루어졌는데, 학생의 사촌언니 말로는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고 한다. 연구제자와 아놀드 박사 사이에 있었던 일이라 당연히 알아야 하는 주제에 대해 의례적인 답변이 돌아오거나, 연구주제에 관해 질문해도 정확한 대답을 내주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화상 통화도, 음성 통화도 모두 조작이 가능한 시대다. AI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이미 죽은 사람을 살아있는 것처럼 꾸며내는 게 뭐 그렇게 어렵겠는가?
학생회관 2층에 자습실이 있다.
자습실로 이동하자.
강선중:(다같이 혼란이네......그대로 일단 과제는 끝내야지...계단 찾아 2층으로 간다.)
자습실로 들어서려던 당신은 복도 끝 학생회실에서 누군가 고함을 지르는 소리를 듣는다.
유리 모하에:언제까지 ……냐고!
요한 에를리히:입 좀 다물어, 밖에 다 들려!
……저 목소리는 아무래도 유리와 요한 같다.
말리는 쪽이 요한이다.
말마따나 다 들렸다.
뭣 때문에 저렇게 싸우는지 몰래 엿들어도 좋지만, 요한이 말린 탓에 간신히 크기를 줄인 유리의 목소리는 엿듣는다고 해도 잘 들리지 않는다.
바깥까지 다 들리니 무슨 일인진 몰라도 목소리를 낮추는 게 좋겠다는 경고를 하러 가는 것도 좋겠다.
강선중:(이번 일로 뭐 터진 거 아냐?? 아니면 그때 그...보다가 멈칫하신 거라던가. 눈치 보더니 슬금슬금 다가가더니 학생회실 문 두드린다.)
두 사람이 싸우는 내용이 차라리 대놓고 들리면 모르겠는데, 가까이 가 보니 방음설계가 되어 있는지 대강 서로 탓하는 것만 얼핏 알 수 있고 정확한 내용은 도통 파악이 안 된다.
학생회실 문을 두드리는 당신, 갑작스레 학생회실 문을 박차고 나오는 유리를 마주하게 된다.
화가 났는지 씩씩거리던 유리는 당신을 발견하지도 못하고 성큼성큼 복도 저편으로 사라진다.
열린 문 안에서 한숨을 쉬던 요한은 잠시 후 학생회실을 나오고, 당신과 마주친다.
요한 에를리히:…….
…다 들렸나?
강선중:........조금씩은요.
..무슨 일 터졌어요?
당신의 대답이 끝나면 요한은 다시 ‘내가 늙는다’는 얼굴을 한 채 한숨을 푹 쉰다.
그런 후 당신에게 스마트워치 하나를 내밀었다.
요한 에를리히:이거, 유리가 두고 갔다. 내가 가면 또 화낼 테니 네가 좀 전해줘. 아마 학관 뒤뜰 정원에 있을 거다.
강선중:(내 질문에 답은..........................쓸쓸하게 워치 받는다.) 네.....
어려운 부탁은 아니지만, 이상한 점은 그게 아니다.
현대에 이르러 방수 기능까지 완벽해진 스마트워치는 정말 특이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좀처럼 풀지 않고 늘 착용하는 기기다.
어째서 스마트워치를 풀었단 말인가?
당신이 요한에게 이것을 질문해도 요한은 답변해 주지 않는다.
뒤뜰로 가 보자.
강선중:(목숨줄은 소중하니까, 뒤뜰로 발걸음 옮긴다.)
요한의 예상대로 유리는 학교 뒤뜰에 있었다.
정확히는 흡연 구역에.
대기오염 탓에 담배는 굉장히 규제가 심한 기호품이었다.
한 갑에 네 시간어치 시급을 털어 넣어야 하는 그것을 유일하게 좀 저렴히 구입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각성자들이었다.
세상이 한 차례 멸망했어도 군인에게 가장 중요한 보급품은 담배와 초콜릿인 모양이다.
당신이 인기척을 낸다면, 유리는 깜짝 놀라 담배를 눌러 끄고 냄새를 탈탈 턴 후에야 멀찍이 서서 대화한다.
유리 모하에:미안, 냄새 나지. ……내가 그걸 놓고 갔어? 고맙다, 야. ……요한 많이 화 났냐?
강선중:화가 많이 났다기 보단...선배가 화 많이 난 걸 신경쓰시는 거 같던데요?
유리 모하에:(제 머리 부여잡고는 끙 앓는다.) 역시 그런가~... 아, 죄책감...! 나중에 가서 사과해야겠다. 너한테도 괜히 안 좋은 모습 보였네. 다시 한번 미안하다.
강선중:아뇨, 딱히.....아, 그보다 학생회실에서 말이 많이 오가셨던 거 같은데...소리가 커서 주변까지 들리더라고요. 선생님께서 들으면 혼날 수 있으니 주의하셔야 할 거 같아요.
유리 모하에:(눈 껌뻑거리다가 제 이마 탁 치며 한숨 내쉰다.) ... 그것도 들렸어? 감정이 격해져서 그만... 말해줘서 고맙다. 주의해야겠네, 응.
강선중:(음. 개인적인 일인 거 같으니 그만 관여해야지. 나중에 뒷말 나올라.) 항상 학교 일을 도맡으시느라 수고 많으셔요. (어색한 침묵이다....) 그나저나, 아침에 그-...시끄러운 일로 꾸중이라도 들었나요? (...) 두 분 친해보이셨는데 오늘따라 분위기가 험악하길래..아하하. (어색한 웃음이다...)
유리 모하에:(수고 많다는 말에 쾌활하게 웃으며 네 어깨 툭툭 친다.) 에이~ 이게 원래 내가 해야 하는 일인데, 뭘. 그래도 그렇게 말해주니 힘이 좀 나는구만? 아침에 시끄러운 일이면... (이어지는 말에 활짝 웃던 얼굴이 가벼운 호선만 그려진다.) 연예인 기사라도 떴어? 동급생 중에서도 몇 명 불려갔어? ... 라고 물어봤었지?
강선중:(상대 분위기 따라 맞춰 함께 활짝 웃어 보인다.) 그래도 하다 보면 온갖 이상한 일이 꼬이기 마련이잖아요. 예전에는 학생회에서 일하는 거에 욕심도 있었는데, 회의하면 늦게 하교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포기했지만요. (가볍게 웃으며 하는 말이 이어질수록 제 동공은 커진다. 다 감시 가능했다고??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선다.) ...다 들을 수 있는 거였어요? (학생회 욕 안 하길 잘했다...)
유리 모하에:오, 정답. 백점 드립니다, 강선중 학생. (박수치고서 어깨동무한다.) 왜? 욕심 계속 가져보지. 하면 잘할 것 같은데. 힘든 것도 많지만 권한도 꽤 있거든. (뒷말은 반쯤 농담인 것 같았다. 네가 놀란 듯한 반응 보이자 가볍게 덧붙인다.) 어떻게 알았냐고?
유리는 호쾌한 성격답지 않게 한참이나 숙고했다.
검지를 입가에 가져가 ‘쉿’ 제스쳐를 취한 그는 손목의 스마트워치를 가리키고선 푸는 시늉을 해 보였다.
아무래도 시계를 풀라는 뜻인 것 같았다.
강선중:네? (스마트워치 뭐 어려운 일도 아니지. 바로 풀고 네게 보여준다.)
당신이 지시대로 시계를 풀자, 유리가 옆면의 S버튼을 묘한 박자에 맞추어 여러 번 눌렀다.
갑작스레 홀로그램 패널이 켜지더니 초록색 안내창을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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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 수집 기능?
그제야 유리가 입을 열었다.
유리 모하에:이 학교엔 듣는 귀가 많아. …그런 주제는 조심하는 게 좋아.
상황이 가리키는 바는 분명하다.
늘 가지고 다니는 스마트워치가 학생들의 대화를 수집하고 있다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강선중:(어차피 나의 개인정보는 수많은 웹사이트 가입을 통해 공인이 되지 않았던가.....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래서 무슨 얘기를 해주시려고..?
당신이 이 사실에 반응하면 유리는 여러 정보를 일러 준다.
유리 모하에:지금 네가 생각한 바가 맞아. 우리의 대화는 언제나 도청되고, 그 기록은 학생회실 서버에 쌓이지. 학생회 소속 중에서도 임원만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지만, 대화 중 특이한 단어가 수집되면 곧장 정부로 보고가 들어가곤 한다.
나는 이 수집에 반대하지만 당장 학생회장으로서 이런 도청을 막을 수 있는 권한이 없어.
네게 위험한 사실을 말해 주는 까닭은 아직 학교 규정을 잘 모르는 네가 혹여나 검열 기준에 어긋나는 대화에 끼어 큰일을 당하지 않을지 걱정이 되기 때문이야. 음성 수집 기능을 잠시 꺼 두는 건 그것대로 기록이 남지만, 이 기록은 내가 지울 수 있으니 몰래 지워 주려고 해. 앞으론 조심해.
……바보 같은 일일 수도 있지. 내가 이런 소리 했답시고 네가 당장 어디 날 고발할 수도 있고. 알아. 하지만 선중아, 그렇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생들이 ‘반동분자 같은’ 말 몇 마디 지껄였다고 학교에서 사라지는 것은 옳은 일이냐? 나는 오래 전에 이미 한 번 친구를 잃었고, 같은 일을 다시 겪고 싶진 않아서 학생회장이 됐어. 멘토 자리도 그래서 자원한 거고.
유리는 몸을 바르게 펴고 당신을 응시한다.
그의 이력에 대해선 잘 알려져 있다.
어린 나이에 각성했고, 부모는 국가기관 연구소에서 일하는 ‘출신성분 확실한’ 가정의 외동딸.
별달리 억압당한 가족도, 잃어버리거나 빼앗긴 재산도 없다.
사관학교에 입학한 후로는 1학년부터 학생회에 있었다.
무엇이 옳은지 설파하기에 그의 삶은 다소 유복하다.
일견 기만으로도 보인다.
그래도 그는 그렇게 말했다.
유리 모하에:…간다. 음성인식 다시 켜려면 S버튼 길게 세 번, 짧게 세 번, 다시 길게 세 번 누르면 돼. 오늘 기록은 내가 한꺼번에 지워줄 테니 자유를 좀 더 누리든가.
뭐라고 더 말할 듯이 입술을 달싹이던 유리는 고개를 내젓고 당신의 등을 두어 번 두드려준 후 자리를 떠났다.
감상은 당신의 몫이다.
강선중:(제 손에 남겨진 워치 쥐곤 점점 사라지는 네 모습 쳐다본다...입학날부터 너무 많은 일들이 지나가.....그냥 각정했을 뿐인데......페어는 어떡하지? 알려줘야 하나? 날 믿긴 할까? ....안 믿겠지. 날 싫어하는 거 같아 보이던데. 근데 성적은 또 좋아서 계속 만날 테고. 음. 그 사람 인생도 만만치 않게 꼬였네.)
과제...아직 하나도 안 했는데. (다시 자습실로 가? 아니면 그냥...버려야 하나?)
잠시 후,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한양운이 오고 있다.
한양운:... 뭐야. 미성년자가 흡연 부스에 왜 있어? (반눈 뜨고는 영 못마땅한 듯 쳐다본다.)
강선중:(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오자마자 또 욕이라니!!) 아니거든요?? (뒤로 크게 발 움직여 흡연 구역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다.) 선배 친구 분이 놓고 간 짐 좀 선배한테 가져다 달라고 해서... (이러니 뭔가 빵셔틀 같기도.) 아무튼, 형은 왜 이곳에 오셨어요?
한양운:나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다. 왜 성질이야. 사춘기냐? (허...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 내뱉고는 네 쪽으로 다가간다.) 심부름? (사족없이 그렇군. 덧붙이고 말았다. 딱히 관심 없는 듯.) 흡연 부스에서 왜 왔냐고 물어보면 뭐라 답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주머니 뒤적이더니 담배는 커녕, 사탕 꺼내 입에 문다.) ... 하나 주리?
강선중:허, 그럴리가요. 진작 끝났죠. (며칠만에 봐서 그런 건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다정한 사람이 곁에 있었던 탓인가, 뭔가 무셔...왜 가까이 오는 건데?) 그런 짓 따위 왜 하냐, 하며 또 욕 하실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없네요. (뭔가 섭섭하기도...) 흡연 부스에서 사탕 먹으면서 하나 주리라고 물어보면 뭐하는 사람인지 도통 알 수가 없는데요. 근데-, 먹을 거 주는 사람은 다~ 착한 사람이죠. 무슨 맛 있어요?
한양운:원래 사춘기 온 애들이 다 자기는 아니라고 그래. (믿을 생각 1도 없는 듯 단정 지었다. 애초에 의문형이 아니었을지도.) 하관이 상관 명령에 따르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욕할 게 있어야 하지. (이쪽도 투덜거리긴 해도 명령은 대부분 따르는 편이다. 하극상 제외.) 계속 모르는 채로 지내. 이제 와서 제가 누굽니다 설명하기도 어색하니까. (뭐지... 개도 아니고 사탕 준다니까 또 꼬리 흔드네. 네 손에 초코맛 사탕 텁 올려준다.) 이거 밖에 안 남았어. 주는 대로 먹어, 인마. (뭘 또 고르려고... 잠시 뜸 들인 후에 네게 묻는다.) 야, 너 아침에 게시글 봤냐?
강선중:그럼 80세 할아버지도 질풍노도의 멋진 사춘기 시절을 보내고 계실 거예요. (과한 억지 부린다. 그래도 같은 학년인데 이런 취급을 받다니...) 훈련이라던가, 명령엔 잘 따르시더니...그런 이유가....그래도 그걸 선후배 사이에도 강제로 적용 시키면 보통 똥군기라고 불러요. (와 사탕~! 나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나 봐! 그냥 낯 가리던 걸지도?? 란 생각이 드니 자연스레 해맑은 미소를 띄게 된다.) 그럼 딱 두 개 들고 계신 거예요? 아하하, 사실은 절 위해 여기까지 오셨다던가? (네가 뜸 들이자 말할 때까지 기다리더니 내용 듣곤 지겹다는 표정 띄며 두 팔 휘적거린다.) 모를 수가 없죠. 깨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붙잡혀서 그 얘기만 왕창 들었는데. ..아직 과제는 시작도 못했고..... (끝 말만 작게 중얼거린다.)
한양운:... 존나 막무가내네. (너무 극단적이잖아. 당연히 이런 취급을 할 수 밖에 없지. 제 앞에 있는 꼬맹이는 고작 18살이고... 본인은 22살이나 처먹었는데 1학년부터 시작이니... 발현 시기도 다 다르니까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사관학교라고 해도 군대는 군대니까 따라야지. 애초에 규칙 같은 거 지킬 생각도 없었으면 얌전히 여기 다니고 있겠냐. (... 시발. 똥군기 소리나 처 들을 줄은 상상도 못 했네. 곁눈질로 살짝 째려보고 만다.) 먹다 보니까 남은 거 준 거거든. 내가 니가 여기 있는지 어떻게 알고 찾아와? 아무도 없을 줄 알았건만... (짧게 한숨 내쉬더니 신경질적으로 제 뒷머리 헝클어트린다.) 쓸데없는 말 같아서 안 하려고 했는데 분위기가 영 이상해서 말이야. 나는 사관학교 때문에 어쩔 수 없고, 부모님이랑 쌍둥이가 스와콥문트로 이사를 갔는데 연락이 잘 안 돼서. 이번에 쌍둥이한테 연락이 왔는데...... 그 새끼가 나한테 먼저 연락할 성격은 아니란 말이지. 부모님이면 모를까.
강선중:아 너무해. 상처예요. (장난스레 제 가슴에 손 얹고 고개 푹 숙인다. 웃고 있는 모습이 딱 봐도 상처 받은 거 같지 않아 보인다.) 보기와 달리 엄청 FM이시네..... (내가 실수한다면..뒷일이 그려지지 않는다...곁눈질로 째려보는 모습 보이면 피식 웃고는 쭈구려 앉아 사탕이나 까서 입에 넣는다.) 전 강제로 하면 이라고 했는데, 아무리 형이라고 해도 그러실 리는 없잖아요. 부탁이랑 명령은 다르니까요. 하하하. (까고 남은 비닐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맛있다, 소리 낸다.) 네-, 네―. 근데 흡연 부스에서 사탕 먹으면 담배 냄새 나지 않아요? 아니면 간접 흡연을 느끼는 건가...있으니 오히려 좋죠? (또 농담으로 이어지겠거니, 하고 장난스러운 말 찾다가, 막상 진지한 말 나오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감을 모르겠는 모양이다. 차마 눈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는 땅으로 꺼진다.) 스와콥문트라면...걱정될만 하네요.....가족이니까.. (다시 고개 들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네게 시선 고정한다.) 쌍둥이 분한텐 어떤 연락이 왔길래요?
한양운:별 거에 다 상처 받네! (어이없다는 듯 말한다. 장난 끼 가득 도는 꼴 봐서는 진심인 것 같진 않지만... 반응이 열 받아.) 허, 대체 날 어떻게 보고 있던 거야? (그냥 욕만 할 줄 아는 싸가지는 고물상에 팔아버린 놈인가.) ... 싫다는 걸 강제로 할 생각은... (뜸. ... 없나? 애초에 누군가한테 '부탁'을 하는 성정은 못 되는데. 말 끝 그냥 흐리고 만다. 하하하.) 뭔 소리야. 너가 이쪽에 있으니까 뭐 좀 아는 거 있나 해서 물어보려 온 거지, 뒤뜰에서 생각 좀 하려고 온 거거든. 사탕은 덤이고. (그냥 평소처럼 우스갯소리겠거니 넘기고 싶었지만... 그럴수가 있어야지. 걱정을 옮길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네 시선에 뚱한 표정 짓고는 검지 손가락으로 네 이마 꾹 누른다.)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연락이 왔다. 메일 열어보고 소름 돋아서 찢어버리고 싶었어. 애초에 홀로그램이라 어림도 없었지만. 이왕 보낼 거면 아버지나 보내주시지 뭔 생뚱맞게...
갑자기 두 사람의 스마트워치에 긴 진동이 느껴졌다.
서사의 판면을 강제로 집어 벌리고 삽입되는 개정 기호처럼 홀로그램 패널은 동의도 없이 방송 창을 띄웠다.
화면 너머에는 각성자사관학교의 학장이 무게감 있는 시선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사안이 중대해 전체방송을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새벽 익명 커뮤니티 ‘인자미나’에 게시된 글의 작성 IP가 교내인 것으로 추적되었습니다.
교수진은 불온한 선동 여론을 조작하려는 시도가 우리 학생 혹은 교원의 손에서 빚어졌다는 사실에 지극한 유감을 표합니다.
학생 여러분께선 헛된 소문에 경도되지 말고 우리 빛나는 오십 년 사학을 지킬 수 있도록 학업에 집중하도록 합시다.
각성자사관학교는 당 사안을 좌시하지 않고 엄중히…….
정말 헛된 소문이라면 이렇게 대응하는 것보다야 무시하는 것이 일을 덜 키우는 방식이리라.
행간에서 윗선의 압력이 있었음을 읽을 수 있는 연설이었다.
지리한 말들이 이어진 후 학장은 벌떡 일어서 허공을 응시했다.
화면에는 이제 학장의 얼굴 대신 아프리카 연합공화국의 국기가 송출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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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국 거친 사막으로부터 인간의 도약 다시 시작되리
조국은 참되어 거짓을 모르니 아프리카여, 영혼의 요람 되어 새 외침을 빚으라
신은 어떤 침략보다도 위로부터 굽어보신다
물수리 나는 창공과 천 년의 녹음 우거진 여름 돌아올 때까지
마땅히 이 자리에서 각자의 구원을 위해 힘쓰겠노라
삶과 죽음은 한 선으로 가로놓여 있어, 동일한 권리 나누어 받은 시민들이여
여기 화합과 희망의 상징, 위대한 화음이 있으니
이 땅의 더 나은 미래를 우리 자녀들에게로 넘기자
국가 <신이여, 아프리카를 굽어보소서>가 작사될 때에 이슬람 교도들과 기독교도들이 조사 하나까지 좀 더 서로의 종교에 알맞은 색깔을 담으려 다투는 광경을 보고,
유럽과 아시아의 ‘선진국’에서 건너온 초기 공화국 시민들은 퍽 당황했다고들 한다.
그들이 생각하기로 아무튼 아프리카의 종교라고 하면 젬베를 두드리며 토착신을 찾는 종류였지 지극히 ‘문명화된’ 메이저 종교를 믿을 리는 없었으니까.
이 무례하고 순진한 오해를 지닌 산부의 산도를 열고 새로운 공화국이 마침내 세상에 머리를 들이밀었을 때 정부는 좀 예민하다 싶을 만큼 ‘화합’을 강조했다.
출신도 문화도 다른 사람들이 재난 때문에 섞여 살게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교정에, 회사에, 길거리에, 카페에, 펍에 국가가 울려퍼질 때, 우리는 당장 하던 일을 멈추고 어디에나 설치된 공화국 국기를 향해 경례해야 한다.
나라 어디서나 국기는 휘날리고, 그것조차 여의치 않을 땐 하늘길 시계가 국가를 자동 인식하여 홀로그램 패널로 국기 이미지를 띄워 준다.
검은 상단은 여러 국가를 뿌리로 둔 시민들이 화합되어야 할 아프리카 연합공화국의 대표색상 역시 모든 색을 섞은 검은색이라는 의미이고,
흰 하단은 이 땅이 흐트러지기 전부터 오래 자리를 지켜 온 아프리카 대륙의 사막을 오염 이전으로 돌려놓겠다는 의지를 상징한다.
가운데 노란 원이 태양을, 태양 안의 붉은 별 일곱 개가 일곱 도시를 나타낸다.
아프리카 연합 공화국의 어린이들은 국부로 추숭되는 초대 대통령의 위인전을 읽으며 자라나고, ‘모든 사람은 동일한 권리를 타고난다’고 교육받으며,
험지를 헤치고 인간의 위대한 문명을 다시 이룩한 조국에 충성을 바치라는 가르침을 듣는다.
학교는 고요하여 발걸음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적은 돈으로 빈 방을 모두 채우라는 요구에 초를 사와 불을 밝혔다던 처녀의 일화처럼 이 광막한 공간에는 오로지 경건하고 엄숙한 국가 선율만이 가득했다.
한양운은, , 경례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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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변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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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널리 드나들 수 있도록 지은 1층 회랑은 카사블랑카의 자부심이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이제 그런 통기성 좋은 건물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워진 시대였기 때문이다.
때로 함신은 굳건한 도시 장벽 너머로부터 날아와 외벽을 덮어 버리곤 했다.
그러나 비공식적 별명으로 ‘제1도시’ 라는 명칭을 가진 카사블랑카의 장벽만은, 공화국 시민들을 불편케 하는 모든 재난으로부터 사람을 지킨다.
언제나 굳건하게.
따사로운 햇살과 축복 같은 적도편동풍이 뺨을 어루만지든 어쩌든, 학생들에게는 불행했던 중간고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 1층 회랑을 지나 2층에 도서관이 있다.
이제 시험은 두 개가 남았다.
<군사전략 입문>, <전략문화와 전쟁>이었다.
<전략문화와 전쟁> 중간고사 시험 대체 조별 과제 에세이는 첫 가상 훈련 때 맺어졌던 페어끼리 함께 작성하는 것이 규칙이었다.
과제의 주제는 이랬다.
「리델하트의 『전략론』을 통해 독일이 독소전쟁에서 패배한 사유를 분석하라.」
…1학년이 당면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과제였다.
본래 <전략문화와 전쟁> 강의 평가는 늘 심한 호불호 영역에 놓여 있었다.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머리를 너무 쥐어뜯은 탓에 그걸 다 치워야 하는 근로장학생들의 스트레스도 갈수록 쌓여 갔다.
당신과 한양운은 도서관 구석 창가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여러 자료를 읽어 내려가는 중이었다.
긴긴 고난 끝에 레포트는 결론 부분에 다다랐다.
한양운:(자료 조사 하느라 쓴 책들을 옆으로 밀어 치우며 미간 짚는다.) 하... 1학년한테 전략론 정독하면서 전쟁에서 패배한 사유를 분석하라는 게 말이 되냐고... 피곤해 뒤지겠네. 총이나 쥐여주지.
강선중:(공간 생기니 기회 보고 책상에 머리 툭, 기댄다.) 수많은 학자가 머리 붙잡고 하는 짓을 저희가........원래라면 뭔 소리냐고 하겠지만..지금은 동의해요...머리 아프고, 글자는 많고, 본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해야죠 뭐....여기에 올려져 있는 자료는 대부분 다 읽어본 거 맞죠?
한양운:너랑 공감이라는 걸 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짧게 한숨 내쉬더니 쥐고 있는 펜 손 위에서 휙휙 돌리다가 자판 다시 두드리기 시작한다.) 다 읽었어. 결론만 쓰면 끝이다. 이 거지 같은 중간고사도 곧 끝이구나... 빌어먹을 교수가 나한테 개 큰 엿을 먹이네. (애 앞이라 대놓고 쌍욕은 못 하겠고... 작게 욕 짓씹는다.)
강선중:전 평소에도 하고 있었다 생각했는데. 같이 사탕 먹고 맛있다, 한다던가? (뻘한 얘기 한다. 책상에 귀 대고 있으니 자판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느낌이다...) 역시 형이네요! 너무 힘들다 하면 AI한테도 부탁해보는 게 어때요? 여긴 기술이 좋으니까, 바로 걸리겠지만요....중간고사 끝나면 재밌는 곳에 놀러 가고 싶은 기분이에요. 아니면 따뜻하게 푹 쉴 수 있는 온천도 좋고요. (엄청나게 저주하는 소리가 들리는데......기분 탓이겠지 했다.)
한양운:난 맛있다고 말한 적 없는데. (자판 두드리던 것 잠깐 멈추고 힐긋 보더니 대꾸한다. 잠시 뿐이었고 금방 다시 두드리긴 했지만.) AI는 무슨... 그런 거 써도 요즘에는 다 들켜. 모를 줄 아냐? 기계가 그래봤자 기계지. 사람은 못 따라잡는다. 뭐... 공부가 아예 안 되는 건 아니니까 하는 거지. 쓰잘데기 없는 거였으면 나도 그냥 AI한테 맡겼을 걸. 아아- 벌써부터 행복회로 돌리지 마... 성적표 어떻게 나오냐의 따라 할복할지 더 살지 정해지는 거다... (상시 대기 중이었던 커피를 쭈욱 들이킨다.)
잠시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근처 자리에서 골머리를 썩던 동급생이 다가와 한양운에게 말을 건다.
"형, 30분 남았어. 우리 슬슬 준비하러 가야 할 것 같은데?"
남은 시험 중 다른 강의인 <군사전략 입문> 가상 훈련에서 한양운과 또다른 임시 페어를 맺고 있는 노노이 라가힛이었다.
한양운은 인사를 나누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뒤에서 유리가 나타난다.
유리 모하에:야, 이거 <전략문화와 전쟁> 레포트지? 그 끔찍한 거? 어떻게 매해 이렇게 참신하게 엿을 먹이시냐.
유리는 근처 서가에서 책을 한 권 뽑아 오더니 한양운이 있던 자리에 앉았다.
후르륵 몇 장을 넘겨 문단 하나를 가리킨다.
…전쟁이란 냉병기를 쥔 영웅들이 대강 ‘와아아’ 하고 몰려왔다가 단신으로는 보일 수 없는 무위로 세상을 휩쓸어 ‘그리하여 여기서 역사의 지도는 변곡점을 맞았다’ 따위로 묘사되는 일이 아니다.
레마르크의 ‘이 책은 고발도 아니고 또 고백도 아니다.
비록 포탄은 피했다 할지라도 역시 전쟁에 의해서 파괴된 어느 시대를 보고하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라는 문장이 저 사막의 신체를 입은 재앙 속에서도 온전히 남아 우리 세대로 전해진 사실을 감사히 여겨야 한다.
<전략문화와 전쟁> 담당교수가 집필한 도서가 분명했다.
그 교수는 특유의 유려한 어조로 전쟁의 비극과 날것 같은 참호전의 참상을 묘사하는 습관이 있었다.
유리 모하에:그 교수님, 자기 책 인용하면 되게 좋아해. 이런 거 참고해서 써봐. 어디까지 썼냐?
강선중:감사해요. 이제 결론만 쓰면 되는데...이게 참, 끝에 다다를수록 의욕이 빠져서요. 졸리고.....자고 싶고........눕고 싶고.......
유리 모하에:그래도 많이 썼는데? 야, 아예 처음부터 포기하는 애들도 수두룩한데 이왕 시작한 거 끝까지 열심히 마무리해 봐. 자자, 파이팅이다 1학년! (평소처럼 웃으며 네 의욕을 되살리려는 모양이다. 그래도 멘티라고...) 아니면 재밌는 얘기라도 할까? 음, 페어랑은 좀 어때? 그 이후로 좀 지났잖아. 이런 얘기는 페어가 없을 때 해야 제 맛 아니겠냐.
강선중:(차마 죽고 싶다고 할 수 없는 분위기.......물이나 벌컥 들이마시고 허리 곳곳이 세운다.) 수정할 내용 보이면 말 좀 해주세요. 이왕 하는 거 높은 점수 받으면 좋으니까.... (페어라는 단어에 귀 쫑긋 세워지는 기분이다. 고민하듯 시선 하늘 올렸다가 다시 내리고 얘기한다.) 음.....아! 처음엔 저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친해진 거 같아요! 저번엔 저 있는 곳까지 찾아와서 사탕도 나눠줬구요~. 선배님은 양운 형이랑 얘기 많이 나눠보시지 않았어요? 저에 대해서 뭔가 얘기했다던가, 그런 건 없었나요?
유리 모하에:오호... 선배를 이렇게 부려 먹는 거냐? 하하, 그래. 저번에 고마운 일도 있으니까 조금 도와줄게. 그래도 여태 쓴 거 보면 나쁘지 않아 보인다. (역시 1학년이라 그런가 페어에 한창 관심 많을 나이긴 하지.) 많이 친해진 것 같아서 다행이네. 안 그래도 그 후배님... 너무 무서워서 나도 잘 못 대하고 있었거든. 나보다 나이도 1살 더 많다고 하더라. (살짝 곤란한 위치긴 하지.) 흐음~ 정말 듣고 싶어? 상처 받을지도 모르는데...
강선중:어떻게 만난 선배인데. 이럴 때 많이 애용해야죠. (가볍게 코웃음 쳤다.) 하하, 형이 많이 도와줬어요. (...둘이 있는 모습을 뇌에 그려보고는 손으로 입 가리고 웃는다.) 아, 확실히, 어렵네요. 그거는. 처음엔 진심으로 조폭이라도 온 줄 알았어요....얘기 조금 나눴더니 친구는 다른 사람 찾아보라고 하고......싫어하는 건 상관 없지만요... (계속 마주치잖아.) 그래도 선배 말은 잘 들을 거라고 하던데요? 사고 안 칠 거라고. (눈썹이 치켜 올라간 채 손으로 책상 몇 번 톡톡 두드린다.) 뭐라고 했길래요?
유리 모하에:호구 아닌 거에 감사해야지. (따라 장난스레 웃는다.)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더라. 그냥 귀찮음이 많은 편인 것 같기도 하고... 아, 저번에 회의 끝나고 남은 간식 있었는데 우연히 마주쳐서 줬더니 꽤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 나중에 써먹어라, 유용한 정보다. 와, 나도. 무슨 엄청난 비밀을 숨기고 온 것 같았어. 그건 니 나이대 맞는 '친구'를 사귀라는 거 아니었으려나? (약간의 충고 얹어주고는 뒷말에 가볍게 미소 짓는다. 선배라 다행이다, 짧게 덧붙이기도 했고. 네 물음에 잔뜩 인상 쓴 채로 목소리 낮게 깔며 말한다.) '딱히 별 생각 없습니다만. 그냥 임시 페어죠, 말 그대로.' ... 라고 하던데.
강선중:어쩐지 흡연 구역에서 사탕 드시더라. 먹을 거 주면 좋다고 경계 푸는 게 제법 애 같네요. (사돈남말이지만.) 나이대 맞는 친구요? 허어..... (양옆으로 두 팔을 길게 늘어뜨린다.) 사회에 나가면 어짜피 거기서 거기인 나이일텐데요. 같은 1학년인데 뭐가 중요하다고. 선배하고도 재밌게 대화하고 있는데 말이에요.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좋은 거지, 그 분은 너무 저에 대한 걱정이 많아요. (충언에 시큰둥하게 답한다.) 욕이라도 한 탕 하셨나...? (자신에 대한 말은 궁금한지 네게 딱 붙어 있다가....답 듣곤 홀가분하게 실실 웃는다.) 전 또 뭐라고. 그 정도면 충분하죠.
유리 모하에:... 흡연 구역에서 사탕을...? (당황한 듯 헛웃음 내뱉더니 이내 폭소한다.) 그러게 말이다! 진짜 특이한 사람이네. (네게 또 어깨동무하며 슬쩍 기댄다. 능청스러운 반응이다.) 내 말이 그 말이야. 본인도 성인으로 치면 어린 쪽에 속하면서 완전 꽉 막힌 사람 같더라고. 뭐, 학교로 치면 교수님 제외하고 제일 많은 나이인 건 맞으니까 다 애들로 보이겠거니 싶지만~ 그래도 애라서 좀 봐주는 면도 있는 것 같긴 하던데?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그 쪽도 그런 것 같으니까. (일부러 분위기 깔긴 했으나 사실 별 내용은 없었다! 1학년 후배 놀리기 재미가 쏠쏠하구만...) 너가 아직 페어가 한양운 후배님 밖에 없어서 긴장 많이 했나 보다. 평균적으로 첫 임시 페어랑 동조율이 50%만 넘어가도 정식 페어로서의 가능성이 있는 걸로 쳐. 페어들은 보통 낮은 동조율로 시작해서 합을 맞출수록 상승하는 기세를 보이거든. 너희는 시작부터 60%를 넘어섰으니 후배님을 놓치는 건 너한테 아까운 일이야. 후배님은 타고난 타인과의 동조율 자체가 좀 높은 것 같더라. 성격이랑 다르게 말이지... 아까 데려간 라가힛인가, 다른 애랑도 수치가 낮지는 않았어.
강선중:그래도 그렇게 막히지는.....생각보다 유연한 점도 있었고요....여러모로.........감사하긴 하지만.. (계속해서 챙겨지는 건....미안하지.) 완전 놀리시는 거였잖아요? ...합을 맞춰본 건 형이 처음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얌전히 얘기 듣고 있다가 이어지는 얘기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뭐, 뭐라고?) 진짜요? 그럼 진짜 저희가 임시 페어로만 남을 수 있다는 거네요? (형하고 정든 것도 있긴 하지만...그 후 나는 다른 누구와 화합도 맞추지 못한 채로 모르는 사람하고 배정되고?) 이미 페어는 뒤에서 다 정해졌나요...? 좋은 소식이라던가, 아니면....좋게하는 방법이라던가...? (학생회 찬스...)
유리 모하에:아니, 아니! 이거 뒷담화처럼 들리면 안 된다?! 그런 의도로 말한 건 절대 아니니까! (손사래치더니 끙끙 앓는다. 단어 선정이 모호해서 그렇게 말한 건데 다른 단어를 쓰자니 머리 굴리는 건 타입이 아니고...) 임시 페어로 남을 확률도 약간은 있긴 하지만... 보통은 절반만 넘어도 정식 페어로 넘어갈 가능성이 현저히 높다니까. 한양운 후배님이 타인과의 동조율이 높다고 해도... 그 중에서 더 높은 애랑 되겠지. (네 이마에 가볍게 딱밤 날린다.) 그건 아직 몰라. 앞으로 상황이 변할 수도 있는 거고, 애초에 언약이라는 게 본인들 의사도 중요한 거니까.
그런 대화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차에, 도서관 내 정숙이라는 예절도 신경 쓰지 않고 미친 듯이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누군지 보기도 전에 당신은 팔을 잡아채여 일으켜 세워졌다.
"강선중! 너 가상훈련 때 한양운이랑 임시 페어 맺었던 애 맞지. 빨리 와! 설계 반동 터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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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가 몸을 튕기듯 일어났다.
유리 모하에:얼른 따라와! 설계 반동이면 제2의무실로 실려 갔을 거야!
의무실 바깥에서부터 심상치 않은 상황이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밀색 에너지가 문 밖까지 일렁이고 있었다.
그 위로 검붉은색 에너지가 얹혀 피처럼 뚝뚝 흘렀다.
문을 박차고 들어간다.
의료진 두 사람이 발작하는 한양운을 억누르고 약을 주사하고 있었다.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푸를 지경이고, 식은땀이 침대보를 적시고 있었다.
한양운은 괴로운 듯이 가슴을 움켜잡고 있다.
강선중:(미친 거 아냐...)
유리가 침대 곁으로 달려가 의료진까지 제치고 화면에 표시되는 에너지 파동을 읽었다.
낭패라는 듯이 그가 외쳤다.
유리 모하에:안정도가 엉망이야! 선생님, 약물로 해결이 안 되는 수준인가요?
"반동이 너무 심하게…… 같이 시험 치르던 학생이 심하게 긴장했던 모양입니다."
한양운의 페어는 노노이 라가힛, ‘입학 시험 때 5등인가 했다던’ 그 동기.
이를 악문 유리의 시선이 허공에 머물렀다.
정확히는 정체 모를 검붉은색 에너지의 흐름을 따라서.
그가 당신을 휙 돌아보았다.
유리 모하에:당장은 방법이 하나뿐인 것 같다. 설계 반동이 이 정도로 왔으면 너라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이러다 얘 죽어!
"아니, 유리 학생. 설계 반동이 위험하긴 해도 죽는 정도까지는……."
유리 모하에:죽어요!
무슨 확신이라도 있는지 고함을 지른 유리가 올올히 일어서 불타는 눈으로 당신을 쏘아보았다.
유리 모하에:이거 에너지 주입 정도로는 안될 것 같아. 언약해. 정식 페어 맺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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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모하에:정식 페어가 된 순간 에너지 유량이 큰 폭으로 증가하니, 날뛰는 각성자를 안정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야. 어쩔래?
유리는 쏘아보듯 당신을 바라본다.
상황이 급박한 것 같다.
강선중:네? 아, 아니 근데 저 상태에서 상대방의 동의를 어떻게 받죠?
유리 모하에:너가 너무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냥 한 말이야. 이쪽에서 싫다고 하면 나중에 페어 언약을 푸는 수단도 있으니까.
강선중:(갑작스럽게 내가 알던 사람이 죽는다니....아니, 군인이라면 일상이겠지만...평정심을 유지해 보려고 해도 역시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유지하기란 싶지 않았다. 목젖까지 실룩거려가며 힘들게 침 삼킨다.) 다른 선택은 없는 거죠......그럼 할게요. (애당초 나는 할 수 있으면 하고 싶었던 쪽이니까..)
당신이 정식 페어를 맺는 것에 동의한다면, 유리가 의료진을 이끌고 의무실 바깥으로 나간다.
‘페어 언약’ 절차시엔 근처에 다른 각성자가 있어서는 안 됐다.
에너지가 엉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양운은 몹시 괴로워하지만 의식은 있다.
한양운을 달래거나 독려하여 안정시키고 페어 언약을 시도하게끔 한다.
강선중:(항상 뚱하게 쳐다보는 모습만 봤었는데....어색하다.) ...말하실 수 있겠어요?
한양운:(식은땀이 턱을 타고 흘러내린다. 짧게 숨 헐떡이고는 눈꺼풀 느리게 깜빡거린다. 곧 아랫입술 짓씹고는 비틀대며 일어나 침대에 앉는 것을 선택했다.) ...... 어. (여전히 가슴 부근 쥐어튼 채로 깔린 목소리로 말한다.) ... 하아... 야.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죽을 정도는 아니다.
강선중:(눈 꾹 감고 손을 말아쥐었다가 펴는 동시에 뜬다. 조금이라도 진정하기 위한 몸짓이었다. 네가 애써 몸을 움직이는 모습 보면 흠칫 놀라 어깨 움츠려든다.) 그렇게 막 움직이시면...! (꾸중하려다가도 멈춘다. 큰 숨 들이쉬더니 구태여 묻지 않고 옆에 앉아 의료실에서 챙겨온 티슈 꺼내 네 땀 닦아준다.) 퍽이나 믿겠어요. 중간 끝나면 성적이 좋든 말든 밥이나 많이 얻어먹어야지. ...분명....에너지를 풀어내라고 했죠.
한양운:그 정도는 아니라니까. (인상 잔뜩 찌푸린 거 하며, 낯빛도 창백한 게 상태가 나쁘다고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인데 간호 받는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도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가 쓰러지는 것보단 얌전히 앉아있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할 판이지. 네가 티슈로 땀을 닦아주면 이미 젖을때로 젖었다고 소용 없다면서 만류한다.) ... 딱 한 번. 네 그 노력을 봐서 사준다... (고개가 힘없이 끄덕인다. 길게 숨 내뱉더니 힘 푼다.) 그냥... 대충 힘 풀고, 편하게 생각하면... 알아서 될 거다.
강선중:안색부터 원래대로 돌려놓고 그러시던가요. (말 죽어도 안 듣네. 청개구린가? 처음엔 불안했지만, 지금은 필요 없다는 모습 보니 걱정과 함께 짜증이 몰려온다.) 그러니까 왜 다쳐서. (네 멱살 꼬깃 약하게 잡더니 제 쪽으로 끌고와 더 꼼꼼히 닦아준다. 약해져 있으니 반항도 못하겠지.) 와 가지고는. (이래도 땀은 계속 나지만...솔직히 재수없기도 했고. 하하. 한결 나아진 모습 보이니 그제서야 풀어준다.) 걱정이나 시키고...아하하, 역시 제가 페어가 아니니까 문제들이 많네요. 꼬맹이다 뭐다 하지만 정작 챙겨줘야 할 건 양운 형이고-. 와. 한 번이나, 감사해라. (머릿속은 살아서 떼를 쓰든 뭐를 하든 더 얻어먹을 계략 뿐이다.) .......편안하게...? (따로 만질 필요는 없나? 에너지인데? 음...접촉해있는 게 더 빠르게 연결되겠지. 생각하곤 네 어깨 감싼 상태로 잠들듯 머리부터 순차적으로 힘 뺀다. 이 편이 나한테 기대기도 편할 테고.)
한양운:... 그게... 한다고 뜻대로 됐으면 지금, 이러고 있겠냐...? (제 몸 하나 간사하느라 화낼 기력도 없다. 아니 내가 이 꼴로 있고 싶어서 이러고 있나. 대꾸하기도 버거운지 겨우 눈만 내리 깔고 쳐다본다. 네가 멱살 잡으면 생각치도 못한 행동이었는지 약간 당황한 것도 보이면서 영 신경에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네 손 살짝 탁 치는 꼴을 보면 예상대로 평소처럼 강압적으로 굴진 못 하는 것 같지만.) ...... 지랄... 이쪽이든... 저쪽이든... 다 거기서 거기지. 너 같은 꼬맹이 새끼 때문에 지금 이 꼴... 난 거 아니야. (터져나가려는 신음 꾹 참고는 한 손으로 제 머리 짚는다. 심장이 무슨 터질 것처럼 쿵쾅거리네. 에너지는 대체 언제 푸는 건지 흘긋 쳐다보려다 네가 어깨 감싸자 황당한 듯 뻣뻣이 굳는다. 손등부터 닭살이 돋은 것 같기도 하고...) ... 야. 시, 발... 에너지만 풀라니까 뭐, 하는 거냐...? (뭐... 덕분에 열은 좀 떨어진 것 같다. 그래.)
강선중 항법 판정
강선중:
항법
기준치: 75/37/15
굴림: 57
판정결과: 보통 성공
한양운 핵심 기능 판정
한양운:
사격(라/산)
기준치: 90/45/18
굴림: 74
판정결과: 보통 성공
…간난신고 끝에 뜨겁고 전류 같은 에너지가 심장까지 메다 꽂혔다.
일견 자해와 비슷하다는 기분이 들 만큼 무자비한 방식의 지배였다.
심장을 움켜쥐는 에너지의 흐름, 온전히 열어젖힌 정서, 경로, 녹은 금속처럼 무섭도록 달아오르는 두 사람의 체온,
세상을 묘사한 페이지가 불타 부스러지고 판정과 글줄로 이루어진 우주에 오로지 둘만이 온전한 것처럼.
잠시 후, 자연스레 피어오른 에너지가 올드 로즈색 빛을 뿌리며 허공을 맴돌기 시작했다.
고통으로 인해 생리적 눈물이 맺힌 한양운의 시선이 당신을 본다.
정신을 차린 것 같다.
에너지 유량이 크게 늘어났다.
이전까지 되지 않던 것이 지금 이 순간부터는 수월하게 가능할 것 같다.
몹시도 기이한 기분이었다.
한양운이 아주 멀어지더라도 찾아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감각.
언젠가 아주 떠나 버릴 것을 예고하듯이.
열병에 들뜬 사람처럼 한양운은 힘겹게 숨을 쉬고 있다.
큰 추위에 시달리는 듯했다.
에너지 유량은 급속도로 늘어났는데, 반동으로 인해 고갈된 에너지가 도로 채워 지질 않으니 추위를 느끼는 것이다.
이것을 안정시키는 방법은 사람의 체온, 그리고 접촉으로 건네주는 에너지 주입 뿐이라는 사실을 당신은 안다.
강선중:(한 순간에 엄청난 감각들이 지나간다. 숨 몰아쉬다 그제서야 정신 번쩍 들자 감싸던 네 어깨부터 톡톡 건드리며 네 상태 확인한다.) 어, 어쩌지...... (별다른 생각하기도 전에 일단 몸이 너무 차가우니 여유로운 팔 가져와 감싸 안는다.) 너무 안 좋아 보여요... (이젠 갑자기 픽 죽어버릴까 무섭다....이렇게 될 거라는 말은 아무한테도 듣지 못했다고.......)
한양운:(네가 건드려도 별 큰 반응을 하진 못 했다. 안아준 뒤로 시간이 좀 흘러서야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릴 거다. 자세히 들어보면 대충 '아... 기분 개 좆같다. 시발. 나한테 왜 이딴 일이 벌어지는 거지. 아직 1학년 밖에 안 됐는데 개 좆 같은 일이 왜 계속 일어나냐' 같은 말을 지껄이고 있다. 18세 정신 건강에는 안 좋아질 것 같으니 그만 듣도록 하자.) ... 하아...... 이제 됐다. (어느정도 갈무리했는지 네 가슴팍 밀어낸다.) 이래서 단체 행동이 거지 같은 거야. 난 한 것도 없는데 괜히 피해 보고. (짧게 혀 찬다.)
강선중:진짜로요? 진짜? (그런가? 일단 뒤로 빠지긴 하지만.....의심이 가시지 않는다. 아파 보였는데. 계속 혼자서도 충분하다고 그러고.....애한테 이런 모습 보여서?) 조금은 아프면 아프다 해도 되는데 말이에요. (제 가슴 손바닥으로 털어내곤 싱긋 웃는다.) 그러니까 역시 저 밖에 없다니까요. 형과의 훈련에서 실수 같은 건 한 번도 안 하고? 한 번도. (괜히 강조한다.) 동조율도 높고? 이제 계속 저랑 다닐테고? 하하. 이미 저랑 언약도 맺은 거 걔는 잊어버려요.
한양운:아, 진짜라고. 귀찮게 왜 이래? 정신 사나워서 오히려 골 울리니까 얌전히 좀 있어. (제 미간 꾹꾹 누르더니 호흡한다. 그래도 전보다 확실히 안색이 나아지긴 했다. 곧 넘어갈 듯 힘겹게 헐떡이던 숨도 얌전해진 편이고. 네가 자랑하듯 말하는 꼴을 옆눈으로 쳐다보다가 길게 한숨 내쉰다.) ... 내가 저런 어린 놈이랑 정식 페어... 라고... 시발... 인생 다사다난하네... 조심해라. 그 놈도 입학 시험에서 성적도 우수했고, 나랑 동조율도 나쁘지 않았다. 오늘따라 좀 당황스러울 정도로 에너지 제어를 못 하는 것 같아 보이더만. 색깔도 그렇고... 원래 그랬었나? 기억이 안 나는데. 원래 에너지 색깔은 연기 같아서 어느 정도 투명도가 있잖아. 근데 걘 검붉고 짙어서 앞이 안 보였다. 그러니까 내 구현도 가려지지. (또 혀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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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테파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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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하메드 5세 광장에서 모하메드 알 한살리 거리를 따라 바다 쪽으로 10여분 걸으면 대형 선박들이 정박한 카사블랑카 항구가 나타난다.
유럽 국가들과의 거의 유일한 교역 통로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오전부터 카사블랑카 항구에서 짐을 잔뜩 실은 트럭 여러 대가 각성자사관학교로 들어왔다.
새 나라가 만들어졌다고 한들 멀쩡한 건물을 부수고 새 벽돌을 올릴 까닭은 없었으므로 아프리카 연합 공화국의 도시들은 저마다 기존 건축 양식을 아직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모로코의 상징은 흰 벽에 녹색 지붕을 이은 호화롭고 장대한 건물들.
아라베스크 문양이 조각된 나무판이 벽면을 둘러싸고, 안뜰은 대리석으로 꾸민다.
젤리즈 타일이 섬세하게 벽을 장식했고, 세밀한 조각과 촘촘한 문양은 사람을 황홀케 했다.
종교 건축물처럼 웅장한 파사드를 지나 여러 개의 건물을 거쳐 이르는 중앙 정원은 안달루시아풍이다.
오늘은 각성자사관학교의 명절이라고 할 수 있는 ‘베로니카 주간’ 둘째날이다.
본래 카사블랑카에는 없었던 명절이고, 다른 아프리카 지역에서 유래한 것도 아닌 절일이지만 학생들은 베로니카 주간을 좋아했다.
초대 학장이 어릴 적 동생의 생일이 되면 가정에서 하던 놀이를 시험 삼아 내놓았던 게 의외로 좋은 반응을 얻어 이제는 아예 축제 주간으로 확장된 것이다.
학생들은 이미 손에 맥주 한 잔씩을 든 채 동아리들이 준비한 행사에 참여하거나 미로 찾기 놀이에 끼는 등 즐거워하고 있었다.
당신도 출발할 때가 되었다.
1학년들은 메인 게임에 참여해야 했으니까.
두 사람이 짝을 이뤄 한 조씩.
그러니까 지금 기숙사 밑에는 한양운이 기다리고 있다.
강선중:재밌겠다~. (혹여 늦었다고 꾸중 먹을까 빠르게 내려간다.)
한양운:(벌써 개피곤하다... 자퇴하고싶다.)
두 사람은 함께 정원으로 향한다.
이 계절이면 흐벅지게 피어 투명하게 빛이 나는 너테파도꽃이 너른 정원과 온실에 가득했다.
얼음이 켜켜이 쌓인 것처럼 꽃잎이 겹을 이루어서 너테, 수십 송이가 바람을 받아 차르르 흔들리면 파도가 일렁이는 것 같아서 파도.
해파리 같은 암술이 보석처럼 푸른 빛을 내고, 반투명한 꽃잎은 그 빛을 그대로 반사하여 시인이 다음 천 년간 내내 노래해도 부족할 것처럼 아름다웠다.
2층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면 더욱 장관이었다.
야자수 아래의 흰 벽돌과 로코코식 낮은 울타리 안에 피어나 깨질 듯이 반짝이는 꽃들.
군데군데 켜 놓은 조명이 부드럽게 퍼지면서 만드는 야경, 속살거리는 학생들의 목소리, 낭만적이고도 뜨거운 열대의 밤.
축제 둘째 날, 이 밤에는 베로니카 주간의 핵심적인 행사인 ‘너테파도꽃 찾기’가 열린다.
종종 피어나는 돌연변이를 아예 품종으로 만든 은색 너테파도꽃이 있는데, 이 은색 꽃을 푸른 꽃들 사이에 단 서른 송이만 숨겨 놓는다.
학급마다 정원을 돌며 은색 꽃을 가장 많이 찾아낸 사람이 상품을 받는 놀이였다.
두 사람이 짝을 짓는데, 이번에도 한양운과 당신은 한 팀이 되었다.
설계 반동이라는 상황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지만, 1학년인 주제에 벌써부터 정식 페어가 되었다는 것이 소문 났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꽤 이목을 끄는 한 쌍이었다.
강선중 관찰 판정
강선중:
관찰력
기준치: 80/40/16
굴림: 63
판정결과: 보통 성공
강선중 행운 판정
강선중:
기준치: 50/25/10
굴림: 89
판정결과: 실패
(.........)
당신은 무언가 발견했다.
잔디 쪽에서 무언가 은색 빛을 내며 빛나는 것이 혹시...?
강선중:(나에게 기적이.....?? 당장 살펴본다.)
앗.
누군가 통조림을 먹고 버려둔 것 같다.
텅 빈 은색 통조림 (쓰레기)를 발견했다.
강선중:..............................................
가지실래요?
한양운:(옆에서 손으로 입 가리고 살짝 비웃는다.) 필요없거든.
강선중:허? (비웃는 표정에 땅 짚고 일어선다.) 형은 찾으실 순 있으세요?
한양운:굳이 이런 재미도 감동도 없는 노름에 어울려 줘야 하나... (학교 축제고 행사고 나발이고... 나이 먹을대로 처 먹어서 피곤하다. 제 뒷목만 문지르며 설렁설렁 본다.)
한양운 관찰 판정
한양운:
관찰력
기준치: 80/40/16
굴림: 2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한양운 행운 판정
한양운:
기준치: 50/25/10
굴림: 78
판정결과: 실패
한양운도 뭔가 반짝이는 걸 발견한 모양이다.
강선중:오?
어라... 저건 은색 꽃...?
강선중:(툭툭) 빨리 가서 봐봐요.
한양운:자원 훼손이라고... (가라니까 가주긴 한다. 애 놀아주기 힘들어 죽겠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너테파도꽃인 줄 알았더니, 그 짭으로 시장에서 자주 팔리는 너드파괴꽃이였다.
저런...
강선중:우와 ㅎㅎ 찐따 꼬일 걱정은 없겠네요.
한양운:(흠... 꽃 지긋이 내려다보다가 금방 털고 일어난다.) 애초에 찐따가 나한테 말을 걸겠냐?
강선중:파괴를 시키는 거였군요....아하하, 실컷 비웃더니 이게 뭐람. 똑같이 못하네.
한양운:기대한 너랑 기대도 안 한 나는 다르지. 니 반응이 웃겨서 그런 건데? (멀뚱히 쳐다보다가 또 비웃으며 고개 돌린다.) 저쪽도 봐보던가. 꼬맹아.
강선중:그런 거 치곤 엄-청나게 열심히 눈 번쩍 뜨고 살피던데요? 너무 열심히 찾으시길래 저는 한 번에 발견할 줄 알았죠. (...또 비웃는 표정에 발끈해서 눈썹 치켜 올린다.) 그러니까 꼬맹이 아니라니까요. (몸은 네 시선을 따라 무언가 있는 쪽으로 향한다.)
강선중 관찰 판정
강선중:
관찰력
기준치: 80/40/16
굴림: 46
판정결과: 보통 성공
강선중 행운 판정
강선중:
기준치: 50/25/10
굴림: 46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니, 저 빛은...!
강선중:오!!!!!!!
저거야 말로 진짜 너테파도꽃 같다!
들었던 외향 설명이랑 완벽하게 딱 맞는 비주얼이다.
강선중:와헐!!!!!! 보이세요? 세 번 만에 찾았어요!!
한양운:어, 그래. 보인다. (사촌 동생 놀아주는 듯 영혼 없이 대꾸하고 박수 쳐준다.)
강선중:(따라 박수친다.) 근데 막 꺾어도 되려나요? ...자원 훼손....
한양운:양심 찔리면 꺾지 말던가. (어차피 학교 측에서 연 축제고, 안 뽑는다고 해도 다른 학우가 뽑을 것 같지만.)
강선중:음...그럼 찾은 게 또 아깝죠. 어차피 학교 측에서 꺾으라고 만든 걸 테고요. (와하하, 승리의 미소 보이더니 툭 꺾어 손에 들고 쳐다본다. 그리고 이걸...어떻게 보관하지?) 음.... (네 모습 눈에 지그시 담더니...꽃 네 가슴 팍 주머니에 조금 튀어나오는 형태로 넣는다.) 이러면 꽃 개수도 알고, 꽃이 망가지지도 손이 무겁지도 않고, 일석 삼조죠.
한양운:(그러던가, 말던가... 학교 축제에 관심 1도 없는 진정한 군바리는 시큰둥하게 쳐다본다. 곧 네가 제 주머니에 꽃 꽂으면 살짝 뒤로 물러난다. 꽂힌 꽃 빼고는 손으로 든다.) ... 이걸 왜 여기에 꽂고 다녀? 들고 다니면 되지.
강선중:(뒤로 물러나자 오히려 본인이 놀란듯 고개 돌리며 두 손 번쩍 든다.) ...에이, 보기도 좋고 귀찮지도 않잖아요. 꾸며줘도 싫어하\시네. 그렇게 들고 있으니 문학 소년 같기도 하고요. 아니면...방학 숙제 하는 초딩. (극단적이다.) 장미였다면 고백하는 남자처럼 보였겠다-.
한양운:보기 좋지도 않고 귀찮아. 사람들이 무조건 쳐다본다. 꾸며주니까 싫어하는 거거든? 뭔 남정네가 꾸미고 다녀? (고정관념적 발언.) 셋 다 탈락. 고백하는 남자는 무슨... (그냥 철쭉남 기출 변형처럼 보이겠지. 그것도 험상궂게 생긴 남자가.)
강선중 행운 판정
강선중:
기준치: 50/25/10
굴림: 75
판정결과: 실패
너테파도꽃 찾기는 순위권 바깥의 결과가 나왔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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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은 시장 가는 것을 거절할 수 없고, 죽은 독수리의 날개깃은 흩어지기 마련
B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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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주간의 셋째 날. 늦게까지 잠들지 않았던 학생들이 오전나절 내내 침대 위나 뒹굴며 쉬고 있었기에 학내는 고요했다.
“----!”
평화를 깬 것은 누군가의 날카로운 비명이었다.
웅성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몇몇 학생이 그 방향으로 뛰쳐나가는 기척이 느껴졌다.
어떻게 할까?
강선중:...뭐지? (슬 눈치보다 중간에 끼어서 뒤따라간다. 궁금하니까.)
“라가힛!”
“누가 응급콜해! 빨리!”
쓰러져 발작하며 피를 토하는 학생을 둘러싸고 주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그 틈을 뚫고 군홧발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다.
2주 전 들이닥쳐 아직도 ‘불온 게시글’ 사건을 수사 중인 헌병대원들이었다.
아프리카 연합 공화국의 헌병대 예장에는 기묘한 모자-가면-투구가 포함되어 있다.
서아프리카 도곤족의 전통을 따른 사팀베 마스크가 그것이다.
디자인 자체는 서아프리카 전통에서 따온 것이니 이상하다고 할 게 없지만, 가면을 쓴 헌병대가 붉은 줄과 구슬을 관자놀이에 드리우고 표정을 감춘 채 사람들을 내려다보면 아무래도 조금 두렵기 마련이다.
죽음의 사자가 내려다보는 광경 속인 것처럼, 노노이 라가힛은 바닥을 긁으며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손톱이 깨지고 피를 토하는 소년의 몸 위에서 검붉은 에너지가 마치 자아를 가진 듯이 움직이며 그를 감싸 죄었다.
요한 에를리히:무슨 일이야!
라가힛의 꼴을 보고 놀란 요한이 달려와 몸을 구부렸다.
엎드려 울부짖는 소년을 껴안아 달래고, 뒤집어 똑바로 눕히고, 눈에 품은 렌즈로 아주 오랜 노출을 주어 사진을 찍듯이 그 광경을 들여다본다.
요한 에를리히:의료진 아직 안 왔어?! 누가 1학년 한양운 좀 불러! 라가힛은 한양운과의 동조율이 가장 높지 않았나?!
부르지 않아도 소란을 듣고 이미 한양운은 군중이 둥그렇게 모여 선 한중간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그가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려던 순간이었다.
모여 있던 학생들은, 사람이 터지면 그런 소리가 난다는 것을 강제로 알게 되었다.
안에서부터 폭탄 스위치가 눌린 것처럼 노노이 라가힛은 말 그대로 터졌다.
공중에 살점과 피가 흩날리는 광경을 굳이 무참하게 묘사할 필요는 없겠다.
곁에 서 있던 요한과 한양운은 피를 흠뻑 뒤집어썼다.
이성 판정
강선중:
SAN Roll
기준치: 49/24/9
굴림: 3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1
너무도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순간이라 비명은 뒤늦게 산발적으로 커졌다.
비틀거리며 도망치거나 주저앉아 구토하는 학생도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헌병대 한 사람이 노노이 라가힛의 가장 큰 부분을 집어들었다.
도곤족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많은 부족들이 가면을 자아 표현과 제식 수단으로 썼지만,
장례식에서 쓰는 가면은 오로지 사팀베 마스크 하나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저 표정 없는 얼굴은 더욱 두렵다.
어떤 사회문화 연구자들은 이 예장을 두고 인류의 기원 이후 아주 오랜만에 사람들을 지도하는 역할을 가질 수 있었던 아프리카인들이
‘문명국’에서 넘어온 ‘비흑인’들을 ‘비문명적’ 방식으로 위압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 아니었나 논설한 적이 있다.
억압받지 않던 자가 억압받던 자들의 방식을 야만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다른 의미로 야만이 될까?
어떤 역사의 신성한 전통을 압제에 사용하는 것은 야만이 아닐까?
이제는 토론할 수 없다.
그 연구자들은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았고, 이 아프리카 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대부터 그러하였듯 기록보다는 구전이어서, 말할 입이 없어진 목소리는 이내 사그라들었다.
오래 내려앉은 그 침묵을 사르고 타는 불꽃처럼, 요한이 고함을 지르며 라가힛의 다리를 붙잡았다.
요한 에를리히:가만히 놔 둬!
그러자 라가힛을 집어들던 헌병대원이 빈 손으로 가면을 밀어 벗었다.
안에서 드러난 것은 이런 상황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인상이 참 좋은 청년이라고 평가했을 법한 남자의 얼굴이다.
관찰력or지능 판정
강선중:
관찰력
기준치: 80/40/16
굴림: 26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당신은 그 청년과 요한 에를리히가 퍽 닮았다는 느낌을 받고, 사관생도가 헌병대원에게 함부로 반말을 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두 사람은 무슨 관계일까?
남자는 낮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한다.
"노노이 라가힛의 신병은 헌병대에서 인수하겠다. 손을 놓기를 권유한다, 요한 에를리히."
요한 에를리히:이 애를 더는 훼손하지 마! 살아있을 때 가지고 논 걸로 충분하잖아, 미친 자식들아!
그러자 남자는 자비를 베풀겠다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라가힛의 가장 큰 부분’을 다시 내려놓았다.
그러고선 한쪽 무릎을 굽혀 (자신과 닮은) 얼굴을 바라본다.
"사관생도 노노이 라가힛에게는 즉결 처분 가능한 혐의의 증거가 있다."
요한 에를리히:…웃기는 소리 마!
"그가 불법적인 약물을 도핑해 그 부작용으로 발작을 일으켰다는 증언이 접수되어 수사한 결과 여러 혐의를 확보했다."
"이 폭사(爆死) 역시 관련이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으니 부검이 필요하겠군. "
"수사가 종료된 후에는 최소한의 인권을 존중하여 유해를 화장하겠다. "
"불만 있나, 요한 에를리히? 그렇다면 정식으로 소를 제기하는 건 어떤가."
요한 에를리히:개새끼야! 닭이 시장 가는 것을 어떻게 거절한단 말이야!
이제 공화국 시민들은 다양한 옛 지역에서 유래된 속담을 다 섞어 쓴다.
‘닭은 시장 가는 것을 거절할 수 없다’는 말은 중부 아프리카에서 올라온 관용어구였다.
약자는 강자를 거부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성적으로 구는 요한답지 않게 점점 격앙되고 있다.
헌병대에게 이런 식으로 반항하다간 징계 감이다.
어떻게 할까?
강선중:(점점 보는 눈이 많아지고 있어....어차피 여기서 반항해봤자 무쓸모일 거야..........그래도 멘토라고 정이라도 생긴 건지, 연민인 건지. 바로 군중 사이 헤집고 나가 요한의 팔 잡고는 제 쪽으로 이끈다. 제 얼굴을 쳐다보면, 포기하라는 의미로 고개 젓는다.)
요한을 말린다면 씨근덕대면서도 서서히 시신에서 손을 뗀다.
이게 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노노이 라가힛의 시신은 결국 헌병대가 회수해 갔다.
오후 일정과 행사는 모조리 취소되었다.
학생들에게는 기숙사로 돌아가 경거망동하지 말고 얌전히 있으라는 식의 공지가 내려왔다.
그나마 기숙사 안에서는 자유로이 다닐 수 있었으므로 친구들의 방과 방을 건너다니며 몰래 저들만의 추측을 속삭이고 있는 듯싶었다.
그날 밤 유리 모하에가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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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푸트니크의 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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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믿을 수 없는 소문은 학생회로 처음 전해져서, 기숙사 휴게실을 몇 개 거쳐 교정 전체로 퍼졌다.
독재에도 등급이 있다.
아프리카 연합 공화국의 지독하리만치 세련된 통치 방식은 사람들을 자기 주도적으로 감화시켰다.
우리는 문명인이야.
한번 스러진 인류를 복구해 빛나는 새 역사를 써내려 가고 있어.
나라가 잘 하고 있으니 박수를 치는 것은 시민의 지지이지 신민의 굴종이 아니야.
사람들은 공화국 정부가 정상적인 정책을 펼치지 않는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그렇게 몇십 년이다.
전시도 아닌 교내에서 헌병대원의 손에 학생회장이 죽었다고 한다.
이 문명적인 나라에서 실로 있을 수 없는 일이 터졌다.
사람은 상상도 하지 못한 잔인한 억압을 보면 일단 공포에 질려 입을 닫는 법이다.
하지만, 왜?
그리고 정말로?
시작은 당신의 방이다.
당신은 기숙사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정보 없이 가만히 숨어 있어서는 무슨 일에 휘말릴지 모른다.
학생들이 많이 가는 장소를 떠올려 보니 기숙사 1층 학생식당이나 2층 휴게실 정도가 생각난다.
학생식당부터 가볼 수 있도록 한다.
강선중:(믿기지 않는다. 시체를 보지도 못했으니 실감도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더 이상 유리 모하에의 모습을 보지도 못할 거라 생각하니 심장이 빠르게 뛴다. 선배도 라가힛처럼 터졌을까?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 뜯었다. 일단...움직여야지. 벽 짚으며 2층 휴게실로 이동한다.)
학생식당에는 헌병대원 두 사람이 경계를 서고 있다.
들어 보니 공식적인 사유는 어제 라가힛의 사건 탓에 교내에서 동요가 일어나는 것을 단속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감시가 있는 탓인지 학생식당은 영 조용하다.
학생들 몇몇이 눈치를 보며 식사를 하고, 주방 직원들도 친근하던 평소와 달리 좀처럼 말을 걸지 못하고 허둥거렸다.
그때 직원 한 사람이 당신을 부른다.
들리지 않도록 조그맣게 속삭인다.
“학생, 요한 군이랑 그 멘토인가 그거지? 요한 군이 어제부터 통 안 보이는데, 큰일이네……. 괜찮으면 이것 좀 전해줄 수 있겠어요?”
라면서 직원이 건넨 것은 웬 달걀 두 개와 음료수였다.
강선중:...네. 만날 수 있으면 꼭 전해드릴게요. (달걀 두 개와 음료수 받는다..)
받아들었을 경우 달걀이 묘하게 가볍고 안에서 달각달각 소리가 난다.
그때, 그 광경을 유심히 보고 있는 학생 하나가 눈에 띈다.
1학년 명찰을 달고는 있는데 영 처음 보는 얼굴이다.
그는 멀찍이 선 헌병대원들의 눈치를 보더니 식판을 돌려놓는 척 다가와 속삭였다.
“앙셰네 지 수습기자예요. 우리 빨대가… 아니, 미안해요. 그러니까 우리 취재원이, 학교에서 어제 큰일이 있었다고 하길래 내용을 알고 싶어서 몰래 들어왔어요. 뭐 얘기해줄 거 없나요?”
앙셰네 지라면 풍자와 비판으로 유명한 대형언론사다.
그는 손에 명함 하나를 쥐여 주고 멀어졌다.
강선중:(...일단 명함 받는다. 무슨 내용을 어떻게 쓸지 알고 다 말해...감시도 되고 있고...가뜩이나 심란해 죽겠는데.) 제가 1학년이라 아는 게 별로 없어서요. 다른 분한테 물어보시는 게 좋겠네요. (시큰둥한 대답이다. 기회만 된다면 빠르게 자리 뜨고 싶다..)
"…그렇군요. 혹시 나중에라도 자세히 이야기해줄 수 있으면 이 번호로 연락 줘요. 부탁이에요.”
주변 학생들에게 요한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볼 수 있다.
강선중:(고개 끄덕이곤 자리 뜬다. 학생들에게 슬그머니 다가가더니 손 인사 한다.) 안녕하세요. 물어볼 게 있어서 그런데...혹시 요한 선배 본 적 있으세요?
대부분의 학생들은 잘 모른다는 반응이지만, ‘아까 2층에서 본 것 같다’는 말을 해 주는 선배가 하나 있다.
강선중:감사합니다. (다시 고개 끄덕인다. 이제 2층으로 가면 되겠지...뻘하게 양운 형이 보고 싶어지는 날이다....혼자는 무섭고...서럽고....2층으로 움직인다.)
이상하게 식당을 제외하면 기숙사엔 헌병대원이 전혀 없었다.
헌병대 수색이 학교와 전부 다 협의되지 않기라도 한 걸까?
조용한 복도를 지나 휴게실로 향한다.
휴게실 문 앞에서 한양운과 마주쳤다.
한양운:(문 손잡이 꾹 쥔 채로 인기척에 시선 돌리고 눈이 마주친다.) ... 뭐야? 넌 또 왜 여기 있어.
강선중:양운 형!!! (삭막한 분위기 속 낯익은 사람!!) 그...이걸 요한 선배한테 가져다 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조심히 달그락 거리는 계란 보여준다.)
한양운:(왜 이렇게 반가워 해? 눈썹 휘어진 채로 멀뚱히 쳐다보던 시선이 달걀 쪽으로 내려간다.) 먼저 들어가라. (주변 살짝 살피는 동태, 잡고 있던 휴게실 문 열어준다.)
강선중:아하하. 마침 형 만나고 싶었는데. 정말 운명일지도요~. (문 열어주자 고개 끄덕이곤 조용히 들어간다.) 감사해요.
휴게실은 각층마다 2개씩은 있고, 퍽 넓어서 작은 도서관처럼 여러 학생들이 쓸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지만 오늘은 인구밀도가 심하게 높았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자 수십 개의 눈동자가 화들짝 놀라거나 경계하는 시선으로 돌아보다가, 같은 학생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안도한다.
학생 몇이 다가와 당신에게 말을 건다.
“얘기 듣고 온 거야, 아니면 그냥 들른 거야?”
강선중:(...무슨 얘기. 도대체 무슨 얘기. 초점 바로 사라진다. 이...이러려고 형은 나를 먼저....? 갑자기 배신감이 몰려 온다.) 저, 저는 그냥 요한 선배한테 이걸 전해주라고 부탁을 받아서..... (또다시 달걀 꺼내 보인다.)
“…모르고 왔구나. 우리, 그 소문이 맞는지 확인 좀 해보려고 모였어. 진짜라면 학교를 다 뒤집어야 할 사안이잖아. 유리 선배 얘기 말이야.”
다들 밤을 샜는지 눈이 벌겠다.
씨근덕거리는 숨소리, 엎드려 자고 있는 학생들, 어디론가 연락을 잔뜩 돌리는 학생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요한이 앉아 있다.
그는 태블릿 디바이스를 조작하고 있었는데, 요즘엔 잘 쓰이지 않는 물리 키보드까지 두드리는 중이었다.
요한도 잠을 제대로 자지 않았는지 얼굴 상태가 영 아니었다.
당신이 달걀과 음료수를 건네줄 경우, 요한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짓고 그것을 받는다.
부활절도 아닌데 귀여운 그림이 그려진 그 달걀에는 ‘성심성당’ 이라는 손글씨가 쓰여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요한은 달걀 껍질을 깨트린다.
안에서 나타난 건 삶은 달걀 흰자가 아니라 빈 내부였다.
손톱만한 메모리 카드가 툭 떨어진다.
요한 에를리히:너희 마침 잘 왔다.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강선중:무슨 일인가요?
요한 에를리히:오전 04시를 기해 정부지침으로 학교와 외부 통신이 완전히 차단됐다. 인자미나도 접속이 안 돼. 학교가 정보적으로 완전히 고립된 상황이지. 내 설계로 이 차단 시스템을 잠시 들어내는 중이야. 유리 얘기가 사실이 맞는지부터 확인하고, 맞다면 다음 대응 방침을 생각할 거다.
강선중:.....(통신이 차단됐다는 건...한 마디로...그 다음으로 죽는 게 우리일 수도 있다는 거겠지..) 유리 선배 얘기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요?
요한 에를리히:... 유리가 죽었다는 소문 못 들었나? 워낙 소란이 커져서 들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두통이 아리는지 제 머리 꾹 누른다.) ... 유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고 신부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너가 가져온 달걀, 우리 학교 옆에 성심성당에 아는 신부님이 계시는데, 내가 부탁해서 보내주신 거고. 만일을 위해 물리적인 공간에 데이터를 저장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 서버에 뭘 기록해 봤자 검열당하면 끝이니.
요한의 능력은 해킹.
에너지를 섬세하게 다루어 서버 간 데이터 전자 신호에 간섭하는 용도로 활용하곤 한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되긴 하지만, 거기에 두 사람의 도움이 왜 필요할까?
요한 에를리히:학교 서버는 규모가 몹시 크고 복잡해. 보안도 아주 철저하지. 이제 마지막 단계만 남았는데, 내 설계가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곧바로 추적될 거다. 너희는 이 학교의 유일한 정식 페어잖아. 동조율이 안정된 페어가 에너지를 뒷받침해 주면 안정적인 설계에 도움이 돼.
... 하지만 강선중, 한양운, 이 일을 돕는다는 건 너희도 이 학교나 정부 지침에 반기를 드는 동조자가 된다는 뜻이다. 나는 유리와 관련된 진실을 파헤쳐야 할 필요가 있고, 여기 모인 애들도 그 목표에 공감하는 사람들이지만, 너희 생각이 어떨지는 몰라.
괜찮겠어?
강선중:(....네쪽으로 고개 돌린다.) 괜찮겠어요?
한양운:(흔쾌히 고개 끄덕인다.) 애초에 난 이 시스템 자체가 마음에 안 들었는데. 잘됐네. (학생 회장이 죽었다는 소문 위에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싶지만 말이다. 이쪽은 경례도 안 하던 사람이었는 걸.)
강선중:(고민도 없이 빠르게 결정하자 오히려 본인이 안절부절 못한다. 지금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건 맞지만...) 그렇게 쉽게요?? 해킹하고 난 뒤의 일도...실패하고 난 뒤의 일도...예측할 수 없는 거 투성이인데 괜찮으세요? 자칫하면 정말, 죽을 수도 있는데.. (애당초 나라에 관심이 크게 있어 보이지도 않았는데. 가족 때문인가..? 물론 본인도 딱히 거절할 마음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 나오니 놀랍긴 하다.)
한양운:(무슨 큰 일이 생긴 사람 치고는 지나치게 평소처럼 무덤덤한 편이긴 하다. 어제 바로 사람이 눈앞에서 터지는 걸 봤는데 말이지. 짧게 한숨 내쉬고는 네 쪽으로 다가가 짜증스레 묻는다.) 그래서 해, 안 해. 결론만 말하라고. 내가 그 정도도 생각 못 하고 본능적으로 대답했을까 봐? 적어도 너보다는 이성적이고, 판단도 제대로 하고 있다. 누굴 물로 보고... (준비 운동이라도 하는 듯 손을 슬쩍 풀고 있다.) 그래서 안 하냐? 안 하면 다른 설계자라도 찾아 봐야지. 그래도 동조율은 높은 편이니까, 뭐. 페어 플레이라는 게 짜증나네...
강선중:아, 아니...그렇지만 양운 형은 죽은 사람을 바로 코앞에서 봤잖아요. 보통 사람이면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장면이었다고요. (지나치게 무감각하네....뭐 하는 사람이야? 인간은 맞나? 오히려 안 하겠다고 하면 어떡하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누가 안 한다고 했어요? 저도 이렇게 나라가 잘못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는 건 성에 안 차요.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보다 훨 나은 상황이죠............아, 한다니까요! 왜 하필 그런 특성으로 태어나서.....저하고만 높았으면 좋았을 텐데요. 서로 서로 편하고. 형만 혼자 어디 불릴 일도 없고.(제대로 건드린 모양이다. 잔뜩 발끈해서 주먹으로 네 등 툭툭 치며 재촉한다.) 바로 가요.
한양운:... 아. 그때 너도 있었냐. (모른 척 하는 거 봐라. 네가 요한을 말리고, 정식 페어로 계약도 했으니 당연히 알고 있을텐데 이건 모른 척 하는 거다. 아직 말 안 한 사연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답이다, 인마. 알면 하면 되지 뭘 그렇게 불안해 해. 난들 알겠냐? 왜 나한테 성질이야, 미친놈이. 언젠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보다 낫다면서. (허, 헛웃음 내뱉고는 심호흡한다.) 후, 해보자.
강선중 항법 판정
강선중:
항법
기준치: 75/37/15
굴림: 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한양운 핵심 기능 판정
한양운:
사격(라/산)
기준치: 90/45/18
굴림: 18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요한은 두 사람의 에너지가 넘실거리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명령어를 입력하고, 엔터를 친 후 옆 사람을 돌아본다.
요한 에를리히:인자미나 접속돼?
“……돼! 잠깐만, 성당으로 전화 걸어 볼게.”
미리 약속이 되어 있었는지 학생들은 단계별로 차단이 해제되었는지 확인해 나가기 시작했다.
요한 에를리히:좋아, 이 휴게실 범위 내에서, 그러니까 내 태블릿 핫스팟으로 데이터가 연결된 범주 내에선 추적당하지 않고 기록 없이 자유롭게 웹에 접속할 수 있다. 우선 유리가 정말 헌병대에게 끌려간 게 맞는지 확인해보려고 해. 신부님이 목격하셨다곤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요한이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홀로그램 패널을 위로 끌어올려 크게 키웠다.
화면이 여러 개로 분할되며 다양한 각도의 CCTV를 재생하기 시작했다.
새벽 시간대를 계속해서 돌려 보며 유리를 찾아내고 있는데, 쉽지 않아 보인다.
강선중 자료조사 판정
강선중:
자료조사
기준치: 80/40/16
굴림: 95
판정결과: 실패
CCTV 영상이 너무 많아 어지럽다.
근처 선배가 정보를 대신 발견한다.
강선중:(토할 거 같아...)
화면 구석 ‘16번 카메라’에서 헌병대원 네 사람이 사람으로 추정되는 것을 어깨에 둘러메고 기숙사 뒷문으로 빠져나가는 장면을 발견한다.
시각은 오늘 새벽 1시 24분.
“저기 멈춰 봐! 1시 24분경. 그래, 맞네! 사람 들고 가잖아!”
“근데 저게 유리 선배라고 어떻게 확신해?”
한양운:딱 봐도 그 양반이구만 저걸 못 알아 보냐. 야 이 새끼들아, 저 신발 그 회장 놈이 맨날 신고 다니던 거잖아.
강선중:(섬세해........) 오....언제 보고 다 기억하고 계셨대. 남한테 관심 없어보였는데.
한양운:관심 없는 거 맞는데. (덤덤하게 대꾸한다.)
"어... 근데 맞는 것 같아! 저거 맨날 신고 다니던 거잖아!"
“어, 차에 태운다. 어디로 데려가는지 봐!”
“미카엘관 뒤쪽으로 나갔네. 저기로 가면 방위사령부 방향 아냐? 헌병대 본부가 거기잖아!”
“하지만… 저건 ‘끌려갔다’지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는 근거는 아니잖아.”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맞는 말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
고민하던 요한이 말했다.
요한 에를리히:만일 방위사령부로 끌려 갔고, …정말 무슨 일이 생겼다면 치료를 위해서든 은폐를 위해서든 병원으로 연락이 갔을 거야. 군 내부에서도 난리가 났을 테고. 저 근방에서 가장 가까운 대형병원이 어디지?
“하씬느. 근데 거기 물어본다고 이렇다할 대답이 나오겠어?”
“괜히 우리가 들쑤셨다가 더 큰일나는 거 아냐?”
“정보 캐는 건 기자들이나 능숙한 일이잖아. 차라리 어디 제보를 하는 건 어때?”
의견이 분분하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강선중:...끼어들어서 죄송하지만 기자 명함을 받은 게 있긴 해요. (안팍 주머니에 받은 명함 꺼내 든다.)
당신이 꺼낸 명함을 요한이 바라보고 말을 잇는다.
요한 에를리히:…좋아, 앙셰네 지는 그나마 정부에 비판적인 논조로 기사를 많이 내는 곳이잖아. 한번 제보해 보자. 그쪽에서 취재해 주길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가능한 많은 학생들을 모아 항의를 하는 거다. 유리가…… 유리가 지금 어떤 상황이든 간에, ‘대학 내에서 학생을 헌병대가 새벽에 몰래 끌고 갔다’는 사실 자체가 특종 감이니.
전화 걸어봐라, 강선중.
강선중:(.......제가요?) ........................................뭐라고 얘기할까요? (상관의 명령은 생각보다 강했다.)
요한 에를리히:대강 상황 정리해서 말해. 제보할 거 있다고, 취재 좀 해달라고 하면 아마 수락해줄 거다. 애초에 명함 받은 것도 그 쪽에서 먼저 너한테 정보를 물어보려고 한 게 아닌가?
강선중:알겠어요.. (이런 건 보통 대표가 하는 줄 알았는데.....제발 내 자신이 스스로 이상한 말만 하지 않기를 빌며 명함에 있는 전화번호로 통화 건다.)
당신이 명함 속 번호로 전화를 걸면 학생식당에서 마주쳤던 수습기자가 연락을 받는다.
그에게 상황을 전달하고 취재를 요청할 수 있다.
강선중:...안녕하세요. 제보할 게 생겨서 연락 드렸습니다......대학 내에서 학생을 헌병대가 새벽에 몰래 끌고 갔어요. 지금은 오전 04시부터 정부지침으로 인해 학교와 외부 통신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고요. 통신은 어찌저찌..............잠깐 해결해서 급히 연락드립니다.
...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요. 우린 우리대로 알아보고, 정황이 나오면 공유해 줄게요. 급한 일이 있으면 이 번호든, 앙셰네 지 공식 번호든 연락해요. 위에 보고해 둘 테니까요.”
강선중:(감사인사 전하곤 통화 끊는다. 이상한 말 안 했겠지.....해결된 거겠지............)
전화를 끊고 학생들이 저마다 할 일을 하며 상황 정리를 기다리는 동안, 요한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강선중:.....뭔가, 되게 여러 일이 지나갔는데........실례가 아니라면...라가힛하고 유리 선배한테 일어난 일이...연관이 있나요? (분위기 때문에 마음속에 묵혀두고 있었지만 사실은 계속해서 남아있던 궁금증이었다. 별개의 일인가?)
요한 에를리히:그건... 연관이 있는지 없는지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커. 어제 라가힛의 신병을 인수하겠다고 온 게 헌병대원이었고, 유리를 끌고 간 것도 헌병대원이니까. 연관성이 없다는 가능성이 더 희박하겠지. 헌병대원이 별도로 행동한 게 아니라면 말이야.
강선중:유리 선배가 이 나라 체계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단 건 알고 있었지만.....이렇게 갑작스럽게 잡혀가실 줄 몰랐어요. 그리고 자칫하면 죽음까지... (너무 앞서갔다. 크게 숨 들이마시고 진정한다.) 사실 유리 선배가 첫 가상모의 실험때 무언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거든요. 제가 질문했을 땐 선배가 별 거 아니라며 모른 척 했었지만....역시 걱정되네요. 무엇인지 알고 계셨다면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라가힛이 이상한 징후를 보였던 것과 관련이 있나 싶기도 하고요.
요한 에를리히:첫 가상 훈련 말하는 건가? 그때 유리가 보고 있었던 건 하산 2세 모스크다. 우리는 북동 게이트 바깥을 묘사한 가상세계에 있었잖아. 하늘길 시스템의 크로노미터 지도를 그대로 따른. 그 모스크는 그 방향에서 보일 수 없어. 좀 더 서쪽에 있으니까. 유리는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보는 지도마저 조작되고 있다고. 정부가 뭔가 말도 안 되는 걸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해. 스와콥문트는 카사블랑카로부터 정확히 1만 km 떨어져 있다. 진실을 호도하기엔 너무 좋은 거리감이지.
강선중:(오......상상 이상으로 더 미쳤는데......) 양운 형은 따로 뭐 궁금한 건..?
한양운:(얘기 듣다가 스와콥문트 얘기가 나오자 멈칫한다.) ... 그러니까 카사블랑카의 지도가 스와콥문트 문제를 증거한다는 얘기인가? 그쪽 문제에 관해서도 말이 많던데, 설명 좀 해주지. 도움도 줬는데.
요한 에를리히:카사블랑카의 지도가 스와콥문트 문제를 증거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처음의 의심은 그렇게 시작되었다는 거지. 보여서는 안될 게 보이니까. 그때부터 유리와 내가 손을 잡고 스와콥문트 문제를 파 보기 시작했어. 아놀드 박사와 관련된 소문이 그때부터 돌고 있었거든.
…맞아, 인자미나에 글을 쓴 게 유리야. 내가 그걸 도왔고. 설령 그 모든 소문이 거짓이라서 처벌을 받아야 하더라도, 그 결과가 새벽에 남몰래 끌려가 종적을 감추는 형태여야 하나?
강선중:...근데 그럼 저번에 유리 선배와 요한 선배가 크게 언성 높이며 다투던 건 왜 그런 거였나요?
요한 에를리히:그건... 너네 때문이다. (손목에 차고 있는 워치 가리킨다.) 유리가 그러더라. '애들은 모르잖아. 우리가 모니터링한다는 거.' 라고. 그 자식 성격 알잖아. 그거 때문에 화낸 거다. 아마 너한테는 워치 음성 해제하는 법도 알려줬을텐데. 맞지?
강선중:..........저희 때문이라고요? (너무......착하잖아...없던 죄책감도 생길 거 같다. 사람이 너무 정의로우니 이런 일이..) 제 궁금증은 다 해결된 거 같아요.....
한양운:그럼 마지막으로 이거 하나만 묻자. 인자미나에 올린 글에 '스와콥문트 시민들'을 찾고 있는 게 보츠와나 망명 정부라고 했잖아. 그건 뭐냐?
요한 에를리히:...... 그건 지금 당장은 말해 주기 어려워. 한양운, 그쪽 가족이 스와콥문트에 있다고 했지?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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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은 한 선으로 가로놓여 있어, 동일한 권리 나누어 받은 시민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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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학생회관.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당신이 앙셰네 지에 한 제보는 상당한 유효타였다.
똘똘 뭉친 기자들이 병원과 군 양쪽에 '빨대를 꽂고' 소식을 물어 왔다.
오전 07시 04분, 유리 모하에의 시신이 하씬느 병원 응급실로 실려 들어왔다.
심폐소생술을 담당했던 의사는 시신이 구급차에 실릴 때부터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고 증언했다.
헌병대는 참으로 교묘한 방식을 사용해 유리의 혐의와 라가힛의 죽음을 하나로 묶었다.
노노이 라가힛이 금지 약물 혐의를 썼고, 그 공급책으로 유리 모하에가 지목된 것이다.
수사 과정 중 라가힛과 동일하게 약물을 과용한 유리가 쇼크사했다는 것이 군과 정부의 입장이었다.
공분한 학생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
이 '평화로운' 나라에서, 고작해야 가끔 강성 노조의 시위 정도나 일어나던 도시에서 갑작스레 불길이 치솟았다.
시위 현장에서 화염병을 던지는 기술은 재앙의 날을 거치며 실전되었지만, 화염병만 저항의 상징이겠는가?
무기는 많았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누구도 공격하지 않은 채 학생회관을 점거하고 농성을 시작했다.
이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자들이 한번 폭력사태를 일으키기 시작하면 상황을 겉잡을 수 없다는 학생회의 판단이 들어맞았다.
4학년 학생들이 학생회관을 겹겹이 둘러 지키고, 아직 전투 역량이 모자란 저학년들은 내부에 모여 앉아 손을 잡고 촛불을 들었다.
당신은, 이때 어디 있었을까?
당신은 어쩌면 선택할 수 있다.
강선중:(........곁에 있던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편안하게 쉴 수 있겠는가. 아마 다함께 촛불을 들며 동참했겠지.)
그리고 그의 곁에 한양운이 있었다.
손을 굳건히 맞잡고 바깥을 바라보면서.
시선은 건물과 옥상을 타고 흘러 모래바람에 실린다.
날아가, 장벽 너머로, 닿고 싶은 곳에.
학생회관 앞에는 오래된 연단이 있었다.
뛰어오른 것은 요한이었다.
그는 떨고 있었다.
두려워서, 무서워서, 긴장되어서가 아니다.
생생하게 살아 지펴진 격노가 그 부르짖음 안에 있다.
요한 에를리히:「높으신 분의 말 한 마디는 한 세기가 끝날 때까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눈썹 하나 까딱하면 날벼락이 떨어지고, ……사람들은 알아서 몸을 낮추고는 풍자시를 달콤한 아부의 시로 고쳐 버린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우리…….
차마 목이 메어서, 요한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읽고 있는 것은 어떤 시였다.
그것도 수첩에 메모한.
그 수첩이 당신 앞으로 툭 떨어진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어떤 역사의 기로에서 적극적이거나 방조적이거나 소극적일 수 있다.
당신은 수첩을 들어 요한의 연설을 받아 읽어줄 수도 있고, 그에게 그것을 돌려줄 수도 있다.
강선중:(말을 잘 잇지 못하는 모습은 이 상황이 더 비극적이라는 걸 깨닫게 한다. 수첩을 들어 요한의 연설을 받아 한 글자 한 글자 또박하게 읽는다. 지금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이런 게 아닐까....)
다음 구절은 이렇다.
「그러나 우리 노래의 선율이 서글픈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슬픔도 분노도 없이 사는 사람은 자신의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니라.」
그 문장이 누군가의 명료한 발음을 타고 터진 순간, 근처 반경에 있던 모든 스마트워치가 새빨갛게 진동하며 경고음을 내보냈다.
금지 문장이 인식되었습니다.
검열된 문장이 인식되었습니다.
음성이 검열되었습니다.
이를 악문 요한이 마이크에 대고 말을 이어 나갔다.
요한 에를리히:이 시를 아십니까?
세상에서 삭제된, 기록말살형을 받은, 끝없이 무수한 텍스트를 아십니까?
러시아 땅이 절반쯤 황폐화되었다고 해서 네크라소프의 시까지 사라져야 합니까?
슬픔도 분노도 없이 살아가던 우리는 어제 학우 두 사람을 잃었습니다.
그렇게 마이크가 순서대로 돌았다.
울며 더듬더듬 준비한 말을 읽는 학생도 있었고, 분노하여 주먹을 휘두르는 학생도 있었으나 대체로는 평화로웠다.
그때,
삐이익-----!
지나치게 큰 호루라기 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이성 판정
강선중:
SAN Roll
기준치: 48/24/9
굴림: 2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성치 감소 없음.
“각성자사관학교 생도들에게 알린다. 지금 즉시 학생회관 점거를 중단하고 해산하도록 한다. 00시 정각까지 해산하지 않을 시 헌병대는 강경 진압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 반복한다, 각성자사관학교 생도들에게 알린다…….”
자정까지는 이제 40분도 채 남지 않았다.
새하얘진 얼굴, 벌건 눈동자들이 요한과 학생회 임원들에게 향했다.
요한 에를리히:……다들 어떻게 하고 싶어? 진압이란 단어까지 썼다면 학교 징계 따위로 끝나지 않을 거야. 체포당했다가, 다신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어. 빠져나갈 사람은 지금 나가도록 해.
“선배는요? 지금 제일 위험한 거 사실 선배예요.”
“1학년, 2학년부터 일단 내보내. 농성을 하더라도 우리가 해야지 전교생의 절반이 여기 몰려 있을 필요는 없잖아.”
그런 후에 요한은 한양운과 당신의 손을 붙잡고 눈을 불태웠다.
요한 에를리히:옳은 말은 거세되어선 안 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살아서 이야기하는 거다. 그래야 다음 세대로 우리 말들이 전해질 수 있다. 어떤 구전은 기록보다도 강력하다. 내 말 이해하겠어?
몇 마디 말이 더 오가고, 치솟는 말들을 삼키던 그는 한양운에게 급히 제 수첩을 쥐여 주었다.
요한 에를리히: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지금 주는 거다. 이건 네가 가져가. 가면서 빨리 읽어 봐. 난 내용 다 외우고 있어.
한양운은 조금 당황하지만, 이런 걸 가지고 실랑이할 시간이 없다.
우선 당신과 함께 이 장소를 빠져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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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선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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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아우성치는 학생들 틈바구니에서 간신히 빠져나왔다.
겨우 인적 드문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제야 멈춰선 한양운은 급히 수첩을 훑어보고, 생각 끝에 결단을 내린다.
한양운:부회장이 하필 날 꼭 집어서 이걸 준 이유가 있다. 인자미나에 올라왔던 글 기억나냐? 스와콥문트 관련 이야기를 무슨 망명 정부가 수집하고 있다던 거. 이상했지. 아프리카 땅에 나라라고는 공화국밖에 없는데 어디서 망명 정부가 있단 말이야. 여기 그 연락책이랑 위치가 쓰여 있다. 칼라하리 사막을 넘어서, 보츠와나에.
그때
탕!
소리가 들린다.
분명한 총성이었다.
학생회관 방향에서 났다.
저편이 몹시 시끄러워졌다.
사이렌 소리, 확성기 소리가 뒤엉켜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결정을 내린 한양운은 이를 악물고 말한다.
한양운:야. 너 기숙사로 가. 너는 오늘 사건과 아무 연관도 없고, 나를 본 적도 없는 거야. ... 나는 가 봐야 할 것 같다.
강선중:.....네? 무슨 말씀을..왜 형까지 그러는 거예요... (혹여나 당장이라도 떠날까 봐 네 소매 꽉 붙잡는다.) 가지 말아주세요. ...아니 차라리 같이 가요. 같이 가면 되잖아요.
한양운:... 학생회관으로 돌아가는 거 아니야. 할 일이 있어서 그런다. 이 보츠와나 망명 정부라는 곳에 가 봐야 돼. 내가 전에 스와콥문트에 가족들 있다고 얘기한 거 기억하냐? 거길 가야 내가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이건 이해해?
강선중:아니 그럼 학교는요! 저랑 맺은 언약은요. 이렇게 시끄러운 판국에 다녀오겠다고요? 거기라고 안전한 건 맞고요? 그런 위험을 감수할 만큼 가족이 그렇게 소중한 거예요? (...본인으로선 이해하기 어렵다. 계속 이해하지 못할 감정일 테고.) ....아니면 수첩에 무슨 중요한 내용이라도 적혀 있었나요? 시간은 있잖아요. 조금만 사태를 지켜보다 떠나도......
한양운:지금 학교가 문제냐? 이쪽은 가족이 걸렸다고. 애 취급하지 말라 할 땐 언제고 이럴 땐 또 애처럼 굴어? (예민한 문제라 약간 짜증스레 말했다.) 시간이 없으니까 하는 말이다. 떠나려면 지금이 적기야. 더 미룰 수 없어. 가능한 빠른 게 좋다. 학내에 소란이 벌어진 오늘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겠지. 휩쓸려 죽었다고 하면 그만이니까. 사상자 한 사람쯤 더 생긴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 너, 언약 끊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 기억을 잃어. 뭘 잃는지는 몰라. 자기 이름이 될 수도 있고, 가장 소중한 순간일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아닌 게 될 수도 있다. 내가 학교를 떠난 게 들키면, 각성자가 사관학교를 떠났다는 것 자체가 중죄니 페어인 넌 강도 높은 조사를 받을 거야. 오늘 사고에 휘말려 내가 죽었다고 증언해라. 상대가 죽어서 해제된 언약만이 기억 손상도 일으키지 않고, 에너지 색상을 원래대로 돌이키지도 않으니까. 내가 없어지기에 지금이 너무 완벽한 조건이잖아. 지금이어야 해.
강선중:.......아니, 그건..........죄송해요. 그렇지만 계속해서 사람이 터지고, 기껏 다가와 준 선배는 반동분자로 취급당해 사형당하고....그냥, 사실은...너무 무서운가 봐요...전부 다 좋은 사람이어서....... (말 끊는다.) 양운 형도 그 사람들처럼 지키고 싶은 게 있을 텐데 말이에요... (그에 비해 본인은 갑작스레 이곳으로 넘어 와 텅텅 빈 흰 도화지처럼 놓여져 있었으니 반대로 조바심도 났던 거 같다. 기껏 색을 채우려고 해도 잿빛으로 사라졌으니 말이다.) 제가 너무 애 같았네요. (잡았던 소매에 점점 힘 풀어 팔 툭 떨군다.) 무언가 힘이 되려고 한 것도 아니고 발목만 잡으려고 해서 죄송해요. 말은 이해했어요. (...긴 침묵이다. 무언가 고민하는 모양 보이더니 제 머리 풀어 손에 있는 검정색 고무줄 네 손에 걸어준다.) 너무 흔한 거긴 하지만요. 하하....지금은 이런 거밖에 없네요. 그새 정이라도 든 걸까요....혹여 양운 형이 무사히 살아남아서 또다시 만난다면 꼭 알아보고 싶어요. ...저도 손목에 차고 다닐 테니까요! 그러니...형도 꼭 손목에 차고 다니세요...더 이상 제 주변인 중에 희생자가 없었으면 좋겠어요.
한양운:... 확실히 18살짜리가 겪기에는 좀 충격적인 일이긴 하네. 뭐, 이해는 한다. 넌 너무 정을 쉽게 줘. 적당히 할 줄도 알아야지. 그 놈의 '친하게 지낼수록 좋죠.'는 무슨... 그럴수록 힘들어지는 건 너 자신이다. (아는 사람들이 하나 둘 다 죽어나갈 때 페어인 동시에 보호자로서 곁을 지켜주지 못 하는 것도 미안한 일이긴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앞에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네가 손목에 검정색 고무줄 걸어주면 말 없이 쳐다보다가 네 손에 다시 쥐어주고 멱살 잡아 제 쪽으로 당긴다. 나름의 복수 같은 행동일지도 몰랐으나, 손으로 네 귓볼에 자리 잡고 있는 피어싱 하나를 뺀다.) 하, 뭔 죽으러 가는 사람처럼 배웅을 하냐? 니 목이나 안 떨어지게 잘 붙여놔라. 그리고 손에 뭐 거는 거 신경 쓰여서 불호야. 싸울 때도 걸리적거리고... 뭐, 이 정도면 방해는 안 되겠네. 깔끔하니. (뺀 피어싱으로 그 자리에서 귀 뚫는다. 웬만하면 건들 생각은 없었지만... 이 정도는 봐줘야지. 스마트워치까지 풀어 네 손에 같이 올린다.) 스마트워치는 각성자들을 에너지 파동으로 구분해. 너가 이 시계를 학생회관에 던져 놓으면, 위치 추적이 안 돼서 경로가 안 그려질 거다. 내가 떠났다는 걸 숨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야. 이걸 맡길 사람이 너밖에 없다.
눈시울이 뜨겁다.
목에 뭔가 걸린 것 같아서.
멀리 모래바람 소리, 발밑에 고인 너테파도꽃, 스무 살의 한 갈피에 고인 너.
돌아올게. 그 약속밖에는 할 수 없다.
믿고 의지하던 대상을 놓고 떠나는 것이 생살을 자르는 것보다도 힘들다.
추억이란 두려운 것이다.
꺼내 보고 쓸어 만질 때마다 닳아 없어지니까.
이윽고 그것으로조차 견딜 수 없을 때가 오면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 텅 빈 구멍이 남으니까.
하지만 이제 우리는, 멈추지도 망설이지도 말아야 할 순간이 닥쳤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어쩌면 선택할 수 있다.
이게 정말 선택일까?
상황에 내몰려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서',
우리 스무 살에, 죽기보다도 힘든 순간을 고르는 것이 선택이기는 한가?
슬픔도 분노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발뒤꿈치를 잘라 놓고 떠나는 것 같은 감각 속에서 진실을 알고자 한 발짝 나아가는 게 대체 의미가 있기는 할까?
그러나 그는 한 발짝을 떼었다.
다시 한 걸음.
돌아보지 않고 걷다가, 뛰었다.
그제야 눈물이 후두둑 쏟아졌다.
끔찍한 격통 속에서, 심장을 쥐뜯는 것 같은 성장통 안에서 한양운은 달렸다.
앞으로,
너머로,
자오선을 넘어서…….
어깨를 무언가 두드린다.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하다가, 끝내는 소나기로 길어져 키질되는 쌀처럼 땅바닥에 까불렸다.
어떤 빗줄기는 해풍의 구조를 이루는 방파제처럼 윤무의 일부에 이르러 춤을 추었다.
세상의 모든 경로와 진실이, 구현이, 설계가, 두 사람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만 같다.
그러나 신의 사랑을 받는 주인공이라면 이런 이별은 겪어도 되지 않으리라.
학생회관 쪽에서 울분에 찬 노래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삶과 죽음은 한 선으로 가로놓여 있어, 동일한 권리 나누어 받은 시민들이여
여기 화합과 희망의 상징, 위대한 화음이 있으니
이 땅의 더 나은 미래를 우리 자녀들에게로 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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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절자들의 나라
B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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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뒤, 각성자사관학교.
계절에 맞지 않게 일부러 피워낸 너테파도꽃이 지천을 뒤덮은 오늘은 각성자사관학교의 49기 졸업식이었다.
4년 전의 소요는 학교에 짐승이 할퀴고 간 듯한 총탄 자국 몇 개만 남겼을 뿐이었다.
죽은 사람은 몇 없었다.
그마저도 오발에 의한 사고라고 판단되어 몇 사람이 징계를 받고 군복을 벗었을 뿐이었다.
이 위대한 공화국에 악의적인 사고란 것이 있기나 하겠는가?
도열한 학생들은 저마다 다른 태도로 바로서 연단을 응시했다.
학장의 지루한 축사가 끝나고, 귀빈들의 특별 축사가 이어질 예정이었다.
어떤 발걸음이 계단을 오른다.
4년 전 학생회관에서의 일 이후, 학생들은 두 파로 갈려 서로를 물고 뜯었다.
'순수한 운동'이란 말이 그 시절쯤에는 농담밖에는 되지 않았다.
분기마다 한 번씩은 누군가가 밀고당하여 학교 바깥으로 사라졌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만큼 많은 사람이 체제에 반항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변절은 사람을 이토록 지난하게 만든다.
소리 없는 걸음.
밀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따라 흩날리는 사람이었다.
영혼이 죽은 것 같은 눈이 학생들을 응시한다.
"여기, 사랑했던 동기들을 길러낸 자랑스러운 나라의 요람에 돌아오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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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서 말하리라>
1부, ‘스와콥문트를 동경하는 자들’ 끝.
2부, ‘아무도 너에게 세계를 구하라 시키지 않았다’ 에서 계속.